이호기 정치부 기자 hglee@hankyung.com
국가정보원의 대통령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2일 본회의에서 국조 계획서가 통과된 이후 지금까지 법무부와 경찰청으로부터 기관보고를 한 차례씩 받은 게 전부다. 핵심 증인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해명 한마디 들어보지 못했다. 조사기간(45일)의 절반 이상을 그렇게 ‘허송’했다.
사정이 이렇게 된 건 애초부터 국조에 임하는 여야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국조 계획서에 따르면 이번 조사의 목적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 유사 사례의 재발을 방지하고,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취지는 갈수록 무색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국조특위가 새로 밝혀낸 사실이 거의 없다. 민주당 위원들조차 이미 지난달 발표된 검찰 수사 결과 이상의 ‘팩트’를 캐내지 못했다. 특위 회의 과정에서 여야 위원들 간에 막말과 고성이 오가면서 본질이 흐려지기도 했다. 지난 25일 경찰청 기관보고 때 “사람 취급을 안 한 지 오래됐다” “양의 탈을 쓰고 나와서”(박영선 민주당 위원) “에이씨”(박범계 민주당 위원)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혼자서 다 하세요” “창피하게 3선(박영선 위원 지칭)이 앉아가지고”(새누리당 위원들) 등 온갖 비아냥과 욕설이 난무했다. 이 때문에 회의가 도중에 수차례 정회되는 사태까지 빚었다.
황교안 법무장관과 이성한 경찰청장의 답변 내용과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황 장관은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답변을 회피했고, 이 청장은 이미 발표된 검찰의 수사 결과조차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비리가 드러난 국정원이나 경찰 직원들을 옹호하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 국정원 직원들이 정치적 중립을 어기고 인터넷 댓글을 달았고 이런 사실이 발각됐지만, 경찰은 “댓글이 없었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선거일 직전 발표했다.
윗선의 개입 여부 등에 대해서도 적잖은 의문이 남아 있다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야당 의원들은 의문을 푸는 데 국조의 초점을 맞춰야 할 텐데, 한풀이식 막말 퍼레이드에 그치고 있다.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이호기 정치부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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