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해야 하나

입력 2013-07-26 17:37
수정 2013-07-26 22:30

민주당이 지난 25일 기초 지방자치단체장 및 의원 선거에서 후보자에 대한 정당공천을 폐지하는 방안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사실 이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의원의 공통 공약이었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그동안 지방정치 현장에서 중앙정치 눈치 보기와 줄서기 등의 폐해가 발생했고 비리 사건도 끊이지 않았다”면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로) 기초의회와 기초단체가 중앙정치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주민 생활에 밀착된 정치를 펼치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문 의원도 대선 당시 낸 선거공약집에서 “지역주의 정치 구도가 해소될 때까지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대선 이후 여야 모두 관련 특위(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민주당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찬반검토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대안 마련에 나섰지만 적잖은 내부 반발에 부딪쳤다. 정당공천을 폐지하면 돈 많고 조직을 갖춘 지역 토호세력이

지방 의회를 장악해 오히려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정계 진출이 요원해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특히 지역 내 기반이 탄탄한 현직 국회의원들은 인맥과 조직관리에 사실상 기초선거 공천권을 활용해왔던 만큼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했다.

여야는 이미 각각 정치쇄신특위와 찬반검토위를 통해 공천 개혁안을 이달 초 발표했다.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는 기초선거의 정당공천을 폐지하되 일몰제를 적용해 앞으로 세 차례(12년)에 걸쳐 선거를 해본 뒤 추후 폐지 여부를 다시 정하는 방안을 내놨다. 민주당 찬반검토위는 정당공천 폐지 의견과 함께 △기초의회 정원의 20%를 여성으로 선출하는 ‘여성명부제’ △기초선거 후보자가 지지 정당을 표방할 수 있는 ‘정당표방제’ △기호제 폐지 및 무작위 추첨으로 후보자 배열 순서를 결정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이번 맞짱토론에서는 기초선거의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에 대한 찬반 주장과 논리를 소개한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찬성 - 중앙정치 눈치 보기 벗어나…기초단체 민생 돌보기 기대

기초자치선거에 정당을 참여시킬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이 문제는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부터 계속되고 있는 해묵은 논란거리다.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처음에는 기초자치선거에 정당의 참여가 배제됐다. 그 후 기초자치단체장(시장, 군수, 구청장) 선거에 정당공천제가 실시됐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부터는 기초자치의원 선거에도 정당공천제가 적용됐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가 다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제도가 많은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이다.

첫째, 기초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기초자치 단체장이나 의원들이 주민을 보면서 일하기보다는 자신의 공천을 결정하는 중앙정치의 눈치를 보면서 처신한다는 것이다. 지방에서 이 문제에 대한 불만은 거의 부글부글 끓는 수준이다. 지방 정치인은 중앙 정치인의 노예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표현은 물론 과장된 것이겠지만 풀뿌리 자치의 자율성이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정당공천 비리 사라지고 지역주의 정당 구조 탈피
둘째, 정당공천을 둘러싼 각종 비리와 불공정 시비 우려도 있다. 기초자치선거 공천과정에서 금품이 오고간 것이 문제가 된 사례는 너무 많다. 이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대단히 크다. 국민들은 드러난 것 외에도 더 많은 비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불공정 시비는 능력이나 품성보다 충성심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공천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셋째, 정당공천과 지역주의가 결합할 경우 정치적 다양성을 잃을 수 있다. 지역주의 정당구도가 지배하고 있는 한국정치 현실에서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는 특정 지역에서 ‘싹쓸이 투표’로 이어져 정치적 다양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새누리당이 지배하고 있는 영남지역의 풀뿌리 정치는 새누리당이 독점하고 있다. 민주당이 지배하고 있는 호남지역의 풀뿌리 정치는 민주당이 독점하고 있다. 여기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란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적 다양성에 기초한 경쟁도 찾아볼 수 없으니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누리는 정치적 서비스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풀뿌리 자치와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인가.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유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정당공천 민주화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정당의 공천과정을 민주화한다는 것은 돈 공천, 밀실 공천, 줄세우기 공천을 하지 않으면 눈치 보기도 비리도 없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이론적으로만 맞다. 현실적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정당공천 민주화를 통해 풀뿌리 자치와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주장은 지방자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부터 나온 주장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의 진정성을 믿어줄 국민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정당들은 수도 없이 그런 약속을 했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생활정치 진출…'여성명부제' 로 확대 가능

풀뿌리 자치 정당공천제는 우리나라 정당정치가 낙후돼 있어 바람직스럽지 않은 결과를 낳는 것이므로 정당정치를 바로잡아서 풀뿌리 자치의 본질을 되찾자는 것이 정당공천제 유지론의 주장이다. 문제는 어느 세월에 정당정치의 풍토를 바로잡느냐는 것이다. 국민들은 정당정치를 바로잡겠다는 기약 없는 말에 풀뿌리 자치와 민주주의의 미래를 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단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은 폐지하자는 것이다.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는 공천으로 인한 지방자치의 현실적 문제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물론 정당공천제 폐지가 절대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당공천을 배제하면서 정당정치의 순기능을 구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정당표방제’가 필요하다. 정당표방제란 기초자치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가 자신의 지지정당을 표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 후보가 여러 명 나올 수도 있다. 유권자로서는 후보자의 정견을 알 수 있는 정보를 가지게 돼 좋다.

정당표방제는 정당공천제의 폐해를 차단하면서 정당정치의 장점을 채택하는, 정당공천 폐지의 보완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정당공천제 폐지의 헌법적 제약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2003년 헌법재판소는 정당표시를 금지하는 제도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따라서 정당표시를 허용하는 정당표방제는 헌법정신에 충실한 것이기도 하다.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를 폐지할 경우 보완해야 할 또 다른 하나의 조치는 ‘여성의 생활정치 진출’이다. 기초자치는 생활정치의 영역이고 여성이 이 영역에 많이 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돼 있다. 이에 따라 2006년 기초자치선거에 정당공천제를 도입하면서 기초의원 정원의 10%를 비례대표로 선출하고 비례대표의 홀수를 여성으로 공천하도록 했다. 그 결과 정당공천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후 여성의원 수는 빠르게 늘어나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기초의원 정원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21%를 넘어섰다. 여성의원의 비율은 앞으로 더 늘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는데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그 길이 막히지 않느냐는 염려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여성명부제’다. 민주당이 제시하고 있는 여성명부제는 기초의원 정원의 20%를 여성으로만 작성된 여성명부에서 기초의원을 선출하자는 것이다. 기초의원이 되고자 하는 여성은 일정한 조건을 갖춰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하면 선관위가 개방형명부를 작성하고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를 뽑는 데 한 표, 여성명부에 오른 후보에게 한 표를 던져서 당선자를 정한다는 원리다. 이 제도의 효과는 지금보다 더 많은 여성의 생활정치 진출을 가져올 것이다.

당파모델이든 비당파모델이든 지고지선의 제도는 없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가 무엇이냐를 기준으로 제도의 적실성을 판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당공천제 폐지론이 풀뿌리 자치와 민주주의 실현에 상대적으로 더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반대 - 기초선거만 폐지는 모순…유권자 알권리 줄어들 것

정당공천제 폐지는 헌법의 근간인 정당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정책의 개발, 민의의 형성과 결집, 인재의 발굴, 중앙과 지방의 매개, 국정통제, 책임정치의 실현 등은 주로 정당을 통해 이뤄진다. 특히 정치·사회적으로 취약한 신진·소수세력과 여성 및 장애인, 정치적 기반이 약한 각계 전문가의 정책개발과 결정·집행과정의 참여 및 선출직 참여는 주로 정당을 통해 실현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헌법 제8조는 정당 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보장하고, 국가에 의한 정당의 보호를 규정하면서, 정당은 그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만 그리고 헌법재판소에 의해서만 해산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당민주주의 부정하는 것…소수세력 정치참여 축소 우려

정당은 민주주의 실현의 필수적 도구이고, 선거를 통해 이를 실현하는 정치적 결사로서, 선거는 정당의 기능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정당을 특정 선거에서 강제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이런 정당의 기능과 참정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신진·소수세력과 여성 또는 장애인 및 정치적 기반이 약한 전문가의 참여를 봉쇄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사실 모든 후보자를 무소속으로 할 경우 오히려 지역 유지나 재력가 또는 유명인사 등이 선거과정에서 유리한 입장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초지방선거에서 정당을 배제하는 것은 다원적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지방자치제도의 기능을 훼손하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와는 다른 정치세력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지방자치제도를 통해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방자치제도는 다원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기능을 한다. 헌법이 규정한 다원적 민주주의의 1차적 실현 수단은 정당이다.

지방자치제도는 권력통제 기능도 실현한다. 정책개발과 결정 및 집행권을 중앙정부와 지자체에 기능적으로 분산함으로써 중앙정부와 지자체 및 지자체 상호 간 수직적·수평적인 권력통제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중앙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지자체 상호 간 수직적·수평적인 권력통제는 바로 정당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지방자치제도를 통한 권력통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당의 개입이 필연적이고, 기초지방선거에서 정당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지방자치제도가 가지는 권력통제기능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한편 다른 여타의 선거에서 인정되는 정당의 후보자 추천을 유독 기초지방선거에서만 금지하는 것은 기초지방선거의 후보자와 유권자 및 정당을 차별하는 것으로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 헌법재판소도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로 나눠 법적으로 달리 취급해야 할 이유가 없고, 광역과 기초의 차이는 지방자치단체의 종류 차이에 불과할 뿐, 지방분권이라는 자치기능에 있어서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84조(무소속후보자의 정당표방제한)는 “무소속 후보자는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받음을 표방할 수 없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정당의 당원경력을 표시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만일 정당공천을 금지하면 정당 소속 내지 정당 추천 후보자가 전무한 상태에서 법 제84조에 따라 모든 무소속 후보자는 특정 정당의 지지 또는 추천을 표방할 수 없다. 이는 후보자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위헌이고, 헌재도 이를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법 제84조를 개정해 모든 무소속 후보자가 특정 정당의 지지 또는 추천을 표방할 수 있도록 하더라도(물론 이는 헌재의 결정대로 헌법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강제사항이다) 이 또한 위헌이다.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추천은 특정 정당을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특정 후보자가 특정 정당의 지지 또는 추천을 표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곧 특정 정당의 추천(공천)을 전제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한쪽에서 정당추천 내지 공천을 금지하면서 다른 한쪽에서 정당의 추천을 표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 자체가 상호 모순이다.

지방자치제도 권력통제 마비…비례대표제 도입 취지 퇴색

정당의 지지·추천 표방을 허용할 경우 기존의 정당공천제와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다. 서로 당선에 유리한 정당의 지지를 받았다는 주장을 하고, 그 결과 유권자에게 혼선을 야기해 혼탁선거가 될 우려가 크다. 또 당선 후 사실상 특정 정당(특히 대정당이나 지역적 지배정당)과의 유대관계 내지 예속관계를 유지하는 의정활동을 하게 되는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신진·소수세력이나 여성 또는 장애인 및 각계 전문가가 지방의회나 단체장에 진출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아울러 법 제84조 단서에서는 후보자가 당원 경력을 표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이 역시 정당공천을 금지할 경우 사실상 정당의 지지 내지 추천 또는 일정한 관련성을 의미하게 돼 정당공천에 준하는 기능을 할 수밖에 없다.

정당공천 폐지는 유권자의 선택권 및 알권리를 침해하고, 유권자의 선거에 대한 무관심을 부채질하고, 불합리한 선거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이는 결국 민주주의원리를 왜곡하는 것이다. 헌재는 기초의회의원선거에서 정당의 영향을 배제하고 인물 본위의 투표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구체적 입법 의도는 그 정당성이 의심스럽다고 판시했다. 즉, 선거에 있어 ‘정당이냐 아니면 인물이냐’에 대한 선택은 궁극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고, 입법자가 후견인적 시각에서 입법을 통해 그런 국민의 선택을 대신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민주주의 이념에 비춰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헌재의 일관된 입장이다.

또 정당공천 폐지는 정당공천을 전제로 한 비례대표제 폐지를 의미한다. 이는 본래의 비례대표제도 도입 취지를 무시하고,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처사다.

결과적으로 전문가의 지방자치 참여확대와 소수·신진세력 및 여성·장애인 보호, 선거구 왜곡 완화와 평등선거 원칙 강화 등 다양한 선거법 기본 원칙과 헌법정신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정연주 <성신여대 법대 교수>


■ 읽을 만한 자료


▷정연주, 정당민주주의와 지방자치제도, 공법연구 제33집 제1호, 한국공법학회, 2004. 11. 20
▷정연주, 현행 비례대표 국회의원선거제도의 문제점과 개선책, 저스티스, 한국법학원, 2002. 12
▷정연주, 분리된 선거구와 체계정당성, 공법연구 30집 4호, 한국공법학회, 2002. 6
▷손혁재, 2014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어떻게 할 것인가, 국회 정치쇄신특위 공청회 진술의견, 2013. 5. 22
안귀옥,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은 유지되어야 한다, 민주당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수도권 공청회 토론문, 2013.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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