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보험公 수출신용 사라지면 中企 해외진출 지원 어려워질 것
실수요자 희생 따르는 통합 안돼
김동선 <중소기업연구원장>
2012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19위다. 한 해 전보다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취약한 금융 부문은 전체 144개국 중 71위다. 금융시장의 발달이라든가 금융제도의 정착 등 인프라 측면에서는 양호하나 금융접근성은 최하위다. 신용접근의 용이성, 대출 용이성 등은 각각 89위와 115위로, 이쯤되면 선진국은커녕 신흥개발국 중에서도 바닥권이다.
이는 우리의 금융 환경이 자금 공급에 목마른 기업 등 수요자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반증한다. 금융의 목적이 자금 수요자와 공급자 간의 원활한 자금 중개에 있고 이를 통해 산업을 발전시키고 여유 자원의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면 수요자가 체감하는 이 같은 금융 결핍은 금융의 본질적 기능에 비춰 볼때 우려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수출신용업무의 개편을 둘러싼 논의는 이를 망각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요지는 간단하다.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가 경쟁하고 있는 중장기 수출신용 지원 업무를 한 곳으로 통합해, 중복지원 및 경쟁에 따른 자원 낭비를 방지하자는 게 골자다. 얼핏 듣기에는 업무의 효율성이나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거론하는 통합론이 솔깃할 수 있지만, 이는 금융의 가용성이라는 수요자 측면의 가치를 희생시키는 논리다. 즉, 수요자가 고려할 수 있는 두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줄임으로써 수요자는 오로지 독점적인 공급자의 판단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두 개의 수출신용기관이 있다는 것은 수요자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는 ‘금융조달의 대안이 있다는 것’이다. 즉, 진출하려는 국가나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기관의 평가나 판단이 틀릴 수 있지만, 어느 한 곳에서 거부하더라도 다른 한 곳을 설득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통로를 막아 버린다면 해외 진출은 산업 측면의 판단이 아니라 금융 관점의 평가에 좌우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더욱이 중장기 수출신용 업무의 통합이 은행중심으로 전개된다면, 건전성 강화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금융기관으로서는 위험이 큰 신흥국 진출이나 중소기업 금융지원에 한층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은 자명하다.
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한 정책금융 지원은 연고 없이 미개척지를 뚫어야 하는 수출기업들에는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특히 무역보험공사는 금융권에서 직접 대출받기 힘든 기업들에 보증이라는 형태로 신용보강을 제공함으로써 수출기업의 과감한 해외 진출을 독려해 왔다. 이 같은 산업육성상의 필요 때문에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수출보험을 유일한 정부지원 수단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두 기관의 업무 통합을 강행한다면 가뜩이나 글로벌화나 해외진출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단적인 예로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의 신용지원액 중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규모는 각각 전체의 19.2%, 16.9%에 불과하다. 두 기관이 경합하는 환경에서도 중소기업 지원 실적이 저조한데, 지원 업무가 단일화된다면 교섭력이 약한 중소기업이 지원을 받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정책 금융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제 수요자 관점으로 전환돼야 한다. 즉 금융의 목적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금융제도가 존재하고 누구를 위해 금융이 기능해야 하는지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산업 현장에서 신천지 개척에 고군분투하는 금융 수요자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외건설업계, 플랜트업계, 해외자원 개발업체들의 금융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 같은 노력을 쏟아붓지 않은 채 기계적 통합론에만 매몰된다면 최근의 일감 몰아주기 과세나 정부구매 촉진을 위한 소상공인 지원법 개정 등과 같이 정책 의도와 다르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수출금융에서의 부작용이란 효율을 명분으로 수출기업들에 절실한 금융 지원의 가능성을 축소하는 것이다. 이 같은 교각살우의 가장 큰 피해자는 중소 수출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동선 <중소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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