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역사에 기록된 첫 도시 파산 사례는 고대 그리스 도시들에서 나타난다. 그리스의 작은 도시들은 개인 파산을 인정하지 않았다. 채무자가 돈을 못 갚은 경우엔 그를 노예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노예들이 급증하면서 도시는 세금을 거두지 못해 파산에 이르렀다. 도시들은 당시 최고의 도시였던 델로스로 달려갔다. 델로스는 신전의 도시였고 자금이 풍부했다. 5세기쯤엔 파산한 도시가 13개에 이르면서 델로스의 금고도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델로스의 파산과 몰락은 도시 패권이 델로스에서 아테네로 옮겨가는 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중세에는 독일의 북부 상업동맹이었던 한자동맹에 참여했던 도시들에서 파산사례가 엿보인다. 한자동맹에 참여한 도시들은 상인들에게 도시가 보증하는 지방채를 발행해 거액의 돈을 빌려줬다가 이들이 제대로 갚지 못하자 파산하게 된다. 이른바 개인 파산법은 이 같은 상인들을 규제하고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미국 최초의 지자체 파산은 1839년 앨라배마주 모바일시의 부도였다. 하지만 그후 잠잠하다가 1934년 연방법으로 파산보호법이 만들어지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940년대엔 도시파산 건수가 무려 215건을 기록했을 정도였다. 파산이 급증하면서 미 정부는 1947년 파산이 어렵도록 이 법을 손질하게 된다.
일본의 유바리시 파산은 일종의 도시자살의 표본 같은 사례로 인용된다. 유바리시는 원래 24곳의 탄광에 12만명이 거주하는 활기찬 도시였다. 하지만 1970년대 에너지원이 석탄에서 석유로 대체되면서 탄광은 문을 닫았고 도시는 활기를 잃었다. 1990년 유바리 시장에 당선된 나카다 데쓰지 씨는 ‘탄광에서 관광으로’란 키워드를 내걸고 각종 리조트단지와 역사박물관 등을 만들었다. 국제영화제도 개최했다. 하지만 콘텐츠가 별로 없었던 유바리시는 반짝 호경기를 맞다가 곧 관광객들이 끊기고 말았다. 이런 변화에도 아랑곳없이 유바리시는 갖가지 투자 사업을 벌여나갔다. 민간이 경영하던 호텔과 스키장을 빚을 내 인수했다. 나카다 시장은 “지방자치 단체는 도산이 없는 존재”라며 “차입금을 아무리 많이 써도 국가가 책임질 것”이라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그는 2003년 세상을 떠났고 결국 2006년 6월 639억엔의 부채를 갚을 수 없어 도시는 파산을 선언했다. 지금 인구는 2만명. 한때 초등학교 22개, 중학교 9개였던 도시에 지금은 한 곳만 남아 있다.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가 지난 17일 파산신고를 했다. 부채총액이 180억달러에 달한다. 대한민국 지방도시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모두가 축제를 열고 대회를 열며 돈을 물쓰듯 한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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