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자연의 멋 간직한 가거도, '바다의 산삼' 을 내놓다

입력 2013-07-21 17:54
수정 2013-07-21 22:29
서울신라호텔 장금승 주방장의 해삼 탐방기

마지막 청정지역…양식장 전무
건해삼 '중국 4대 보양 식재료' 쓰여…체내 흡수율 90%라 영양만점
사방이 일급 포인트…낚시꾼들 인기



푹푹 찌는 여름이다. 내 직업이 요리사여서인지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셰프는 이 뜨거운 여름을 어떤 보양식을 먹고 견디냐?”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의 답은 늘 하나다. 건해삼, 즉 말린 해삼 요리다. 세상에 이만한 고단백 저칼로리 보양 식재료를 본 적이 없다. 최고의 식재료이자 ‘바다의 산삼’으로 불리는 해삼은 어느 지역 것이 최고일까? 답은? 가거도다. 전라남도 신안군의 작은 섬, 우리 국토의 최서남단 가거도는 물살이 세고 물이 깨끗해 해삼의 품질이 국내 최고 수준이다. 험한 바닷길을 넘어 가거도를 찾은 것도 최고의 식재료가 있다면 어느 곳이고 찾아가는 요리쟁이만의 고집 때문일 것이다.


◆식재료 통해 요리에 대한 영감 얻어

가거도에 도착해 느낀 첫인상은 의외로 단순했다. 물이 참 깨끗하다! 수심이 깊어서 컴컴할 정도로. 내게 가거도를 처음 소개해준 이는 이곳이 ‘마지막 남은 청정 지역’이라고 했다. “해류가 하도 세서 양식을 할 수 없는, 그래서 섬 주위에 양식장이 전무한 곳”이란다. 양식장이 없으니 수질 오염 걱정이 없다. 제주도는 요즘 다른 지역에서 어획한 것이 ‘제주산’ 이름을 달고 현지에서 유통되고 있어 문제라는데, 가거도에서는 이런 속임수도 불가능하다. 그만큼 멀리 떨어진 섬이라는 얘기다.

오죽하면 가거도 어르신들은 6ㆍ25전쟁도 소식으로만 들었단다. 멀리 들리는 포성으로 ‘어느 바다에서 해전이 일어났나’ 했단다. 예로부터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가가도(嘉佳島, 可佳島)’로 불리다가, 1896년부터 ‘가히 살 만한 섬’이란 뜻의 ‘可居島’로 명명됐다는 이야기만 봐도 그렇다.

주방장이 웬 식재료 탐방이냐 싶을 수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서울신라호텔 주방장들과 구매팀 담당자들에게는 빈번하게 있는 업무의 연장이다. 음식의 핵심은 한국 최고의 식재료에 있다고 보고, 오랫동안 해산물, 채소와 과일, 육류 등 분야별 구매 전문가를 양성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 중 특히 중요한 식재료는 주방장이 동행해 직접 산지를 둘러본다. 덕분에 산으로, 들로, 바다로 철마다 떠난다. 오랜 경험 끝에 얻은 깨달음도 있다. 식재료는 자연의 일부이고, 그것은 제 고향을 닮았다는 것. 식재료가 자란 환경을 보고 나면, 그 재료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 요리에 대한 영감을 받기도 한다.


◆육질이 쫀득하고 풍미가 좋은 해삼

가거도 해삼은 해녀들이 물질해서 낚는다. 갓 건져 올린 해삼을 보고 싶었다. 오전 6시 반, 해녀를 태운 작은 어선에 동승했다.

섬에서 멀지 않은 바다로 나가 배를 멈췄다. 해녀 김추삼 씨(66)가 바닷물 들어간 뒤 30분쯤 지나 터질 듯이 불룩한 망태기와 함께 올라왔다. 90% 정도가 해삼이고, 뿔소라와 왕전복이 더러 있었다. “헙…!” 김씨가 쏟아낸 해삼을 보고 나도 모르게 외마디 탄성이 나왔다. 어른 팔뚝만한 크기와 힘있게 돋아난 돌기에 압도됐다.

“해삼은 여기 것이 젤로 좋아.” 제주도부터 강원도, 남해 등지를 거치며 평생 물질을 해왔다는 김씨의 말이다. “크기도 하지만, 맛이 진해.” 그틈에 선주(船主) 임세국 씨가 해삼을 툭툭 썰어 줬다. 오도독, 깨무는 것과 동시에 혀에 달라붙었다. 눈이 감겼다. 더 말해 무엇하랴. 바다, 늘 그리웠던 바다의 맛이다.

“가거도 해삼은 다른 곳 해삼과 비교하시면 안돼요. 육질이 이렇게 쫀득하고, 풍미가 기가 막힌 해삼을 본 적이 없다니까요. 가거도 바다가 억세서 그래요.” 임세국 씨는 10여년 전 가거도에 정착했다. 여러 지역을 다니며 뱃일을 해온 그는 가거도처럼 거칠고, 그래서 더욱 끌리는 바다를 경험한 적이 없다. 해저 가두리 사업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찬 꿈을 품고 가거도로 온 그는, 웬만한 풍파에도 무릎 꿇어본 적 없는 그는, 이내 계획을 수정했다.

“5~6년 전인가, 해삼을 양식해볼까 싶어서 새끼 해삼 1억원어치를 이곳에 뿌렸어요. 그런데 죄 쓸려갔는지 죽었는지 흔적도 없어졌어요.” 그러고 나자, 가거도에 자생하는 자연산 생물들에 대한 의미가 달라졌다. “험하디 험한 바다에 적응한 것들은 모두 위대하구나” 싶었다고 한다.

해삼은 여러 모로 불가사의한 생물이다. 눈도 머리도 없이 단순하게 생겼는데, 이 지구에서 5억년 동안 생존해왔고, 몸을 반으로 가르면 며칠 만에 두 마리로 재생된다. 칼슘, 인, 철분은 물론 인삼에 많은 사포닌도 품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에서 예로부터 몸을 보하는 효과가 인삼과 맞먹는다 하여 바다 삼, 즉 해삼(海蔘)이라 불렀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건해삼은 이보다 더하다. 생해삼을 섭취하면 체내 흡수율이 63%가량인데, 건해삼은 흡수율이 90% 이상이다. 단백질은 20배 이상, 칼슘과 철분은 50배 이상으로 흡수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김경룡 과장이 일침을 놓는다. “바다라는 자연에서 첫 생명을 얻은 해삼이, 태양이라는 또 다른 자연을 만나 두 번째 생명과 힘을 얻습니다. 부활의 귀재네요.”

갱년기 여성과 협심증 환자에게 특히 효과가 좋다. 흔히 해삼을 바다의 인삼에 비유하는데, 나는 산삼에 비할 만하다고 본다. 생태적인 측면에서도 자연산이니 인삼이 아닌 산삼이요, 말려서 영양분이 배가되니 효능 측면에서도 산삼급이 아닌가.

◆중국 황제에게 진상하던 보양식

건해삼의 진가는 중국 황제들이 먼저 알아보았다. 건해삼은 제비집, 상어지느러미, 건전복과 함께 중국 4대 보양 식재료 중 하나였다. 오래 전 중국이 조공을 받거나 교역을 할 때 비단과 맞바꾸던 것이 바로 건해삼이기도 했다. 당시 금이나 은의 가치와 맞먹었던 것이다. 말리면 원래 무게의 5%가량으로 줄어드는데, 물에 불리고 끓여내면 거의 원상복귀되니 저장하기 좋은 식재료였다.

뿐만 아니라 요리사 입장에서는 건조 과정을 거치며 특유의 맛과 질감이 더해지니 매력적인 식재료다. 귀한 손님이 오면 ‘원즙 통해삼’이라는 요리를 종종 내곤 한다. 건해삼을 통째로 세심하게 불리고 쪄낸 뒤 데친 채소를 곁들이고 파기름을 가미한 특제 소스를 뿌린 요리다. 돌기 하나까지 탱탱하게 복원된 통 건해삼을 보는 재미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이중적인 맛에 누구나 반한다.

가거도 건해삼이 좋은 이유는 원재료의 품질이 훌륭하기도 하지만, 건조 과정을 책임지는 장인의 솜씨 덕분이기도 하다. 화교인 난학독 씨(66)가 그 주인공이다. 매년 5~7월 해삼 철마다 가거도에서 해삼 건조 작업을 한다. 우리나라 전역을 다니며 건해삼 작업을 해오다, 10여 년 전부터 가거도에 정착했다. 그의 건해삼이 남다르다는 소문을 듣고 비법을 물으러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그럴 때면 “해삼 건조 작업은 하늘의 뜻에 달린 일”이라며 거절한다. 몸으로 한 땀 한 땀 익혀온 비법이 아까워서라기보다는, 해수 온도, 건조 기간의 날씨, 삶는 동안 불의 높낮이 등은 하늘이 관장하고 있고, 이를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며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고된 작업을 홀로 해오다 얼마 전부터 아들 난세문 씨(38) 내외가 합류해 이제는 대를 이을 사람이 생겼다.

가거도에 배를 타고 섬 주위를 돌다 보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 언저리에 오래 전 어느 가택을 탈출했을 흑염소가 이제는 야생의 상태로 노닐고 있다. “흑염소 한 마리가 미끄러져 떨어지는 날은, 섬 전체의 회식 날”이란다.

사방이 ‘일급 포인트’인 덕분에 낚시꾼들이 사랑하는 섬이고, 곳곳에 비경을 감추고 있어서 등산객의 방문도 많다.

장금승(신라호텔 팔선 주방장)

■ 여행 팁

가거도의 정확한 주소는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리다. 목포에서 145㎞ 떨어진, 그야말로 국토 최서남단이므로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최소 2박3일의 여정을 짜는 것이 좋다.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가장 빠른 교통편은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KTX를 타고 목포에 가서(약 3시간), 가거도행 여객선(4시간 30분)을 타는 방법이다. 목포를 출발해 가거도에 도착하는 여객선은 매일 아침 8시10분(5만5800원)에, 가거도를 출발해 목포 도착하는 여객선은 매일 오후 1시(5만4300원)에 있다. 흑산도, 하태, 만재도 등을 경유한다. 여객선은 뒤쪽에 앉는 것이 출렁임이 덜하니, 뱃멀미가 심한 사람은 참고할 사항이다.

가거도 현지 숙박은 민박과 모텔이 전부다. 음식점은 따로 없고, 비용을 얼마간 추가해 여행객 숙소에서 운영하는 식당을 이용하는 식이다. 그러나 전문 식당 저리 가라 할 만큼 맛이 좋다. 신선한 식재료에 전라도 손맛을 더해 차려낸 백반이 주 메뉴다. 저녁 식사로는 미리 주문하면 해삼을 비롯해 돌돔, 전복 등 제철 자연산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꽤 많은 숙소에서 어선을 소유하고 있어, 주인장이 당일에 직접 잡은 싱싱한 자연산을 도시 물가 대비 매우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대표적으로 가거1구 선착장 바로 앞에 있는 가거비치모텔(061-246-5757)은 어촌계 회장 정석규 씨 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기본 반찬 가짓수도 많고, 인심이 후하다. 가거2구에 있는 다희네 민박(061-246-5130)은 가거도 선주(船主) 임세국 씨가 운영하는 곳으로, 미리 얘기만 하면 그날 잡은 제일 좋은 해산물로 저녁 메뉴를 구성해준다.



▶ [Travel] 휴가 준비 늦었다고 당황하셨어요? 하나투어 '특별기 상품' 어때요

▶ [투어 &] 아침고요수목원 내달까지 무궁화 축제 등

▶ [Travel] 키다리 인형과 유럽의 분위기를 즐긴다

▶ [Travel] 장엄하고 흥미롭다

[한국경제 구독신청] [온라인 기사구매] [한국경제 모바일 서비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