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은 서울 도성의 남쪽을 동서로 가로지른 산으로 무한히 부드럽고 아름다운 기품을 지녔다. 예나 지금이나 남산에 올라 서울 도심의 빌딩을 한눈에 굽어보는 감회는 남산만이 주는 각별한 감흥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조선 시대를 통틀어 남산은 어떤 문헌에도 ‘남산’이란 이름으로는 불리지 않았다. 목멱산(木覓山) 혹은 인경산(引慶山)이라 했다. 이는 도성의 남쪽에 있는 대문에 ‘숭례문’이란 현판이 버젓이 걸려 있어도 한때 ‘남대문’이라 불렀던 것과 같다. 본명 대신에 ‘도성의 남쪽에 있는 산’이란 뜻에서 통례적으로 ‘남산’이라 부른 것이다.
‘남산골 샌님’이란 말이 있다. 가난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선비를 뜻하는데 남산 기슭의 청학동에 그런 선비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이행은 조선 초기에 우의정에 올라 대제학을 겸한 분으로 청학동에 초가를 짓고 살아서 청학도인이라 불렸다. 어느 날 해가 저물었는데 의정부 녹사가 보고할 일이 있어 청학동에 찾아왔다. 그런데 수염이 덥수룩한 늙은이가 허름한 옷에 나막신을 신고 동구 밖을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녹사는 말을 탄 채로 “정승께서 집에 계신가”라고 묻자 “무슨 급한 일이기에. 내 여기 있네”라 하자 그가 놀라서 말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조선의 태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북쪽의 북악산을 현무로 삼고 서쪽의 인왕산을 백호, 동쪽의 낙산을 청룡으로 삼은 뒤 남쪽의 목멱산과 그 뒤의 관악산을 주작으로 삼았다. 한북정맥의 중조산인 북한산은 북악산을 낳았고, 자하문 터널을 지난 지맥은 몸을 재차 남서진시켜 인왕산으로 솟고 숭례문에서 몸을 잠시 낮추었다가 다시 남산으로 솟구쳤으니, 남산이 있어 서울의 중심부가 산으로 둥글게 에워싸이고 전후좌우에 사신사를 고루 갖춘 풍수적 길지가 됐다. 남산의 풍수적 역할은 한강에서 도성을 향해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막는 안산이다.
남산의 정상에는 조선 중기까지 제사를 지내던 국사당이 있었다. 또 통신 제도의 하나로 나라의 위급함을 알리던 봉수대도 있어 국방상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 신궁이 들어선 적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수립 후 1955년에는 이승만 박사의 동상이 세워졌고 다시 419 때 시민들이 철거해 버리자 대신 김구 선생의 동상이 우뚝 섰다.
현재 정상에는 서울타워와 팔각정이 있고, 허리쯤에는 남산도서관과 식물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다. 이곳을 찾는다면 시류와 민심 그리고 역사의 한 자락을 엿볼 수 있어 즐겁다.
풍수적으로 남산은 전장에서 말이 안장을 벗는 주마탈안형의 모습으로 서쪽 봉우리 중 바위가 깎아지른 곳을 누에머리인 ‘잠두(蠶頭)’라 부른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조망이 가장 좋다. 그리고 풍수는 땅의 힘, 즉 지덕을 키우는 비보책이 있는데 남산이 누에머리를 닮았으므로 뽕나무를 심으면 지덕이 커진다.
그래서 사평리(현재 잠원동)에 뽕나무를 심은 뒤 그곳을 잠실이라 불렀고 이 뽕나무들은 궁중의 양잠에도 이용됐다.
고제희 < 대동풍수지리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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