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산업은행·정책금융공사, 다시 합쳐야 하나

입력 2013-07-19 16:59
수정 2013-07-19 20:53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 재통합 문제가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금융위원회가 운영 중인 ‘정책금융 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는 최근 산업은행(산은금융지주)과 정책금융공사를 통합할지 여부에 관해 회의를 했다. 이날 금융위 측에서는 두 기관을 통합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금융공사는 2009년 설립된 신생 조직이다. 만든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금세 다시 통합을 논하는 이유는 정책금융공사를 만들 때의 ‘이상’과 지난 수년간의 ‘현실’이 좀 달랐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산업은행을 민영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기능을 살리기 위해 정책금융공사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닥치고 금융 환경이 달라지면서 산업은행을 민영화해서 세계적인 투자은행(IB)으로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한풀 꺾였다. 원래 구상은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기능을 순차적으로 공사에 이관하고 산업은행은 기업공개(IPO)를 거쳐 민영화하겠다는 것이었는데 금융위기 후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역할은 그다지 줄지 않았다.

정책금융공사는 정책자금을 민간 금융회사에 빌려줘서 민간 금융회사가 중소기업을 지원하도록 하는 간접금융(온렌딩) 등 새로운 정책금융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시장에서는 아직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 간에 뚜렷한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정부가 두 기관의 통합을 다시 제안한 이유는 중복 기능을 해소하고 정책금융 역할을 다시 강화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장은 “정책금융을 할 거라면 굳이 경쟁 체제를 만들어 비효율을 감내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당초 산업은행 민영화를 추진한 이유 중 여전히 유효한 게 많다는 것이다. 박연우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형 은행계 투자은행(CIB 메가뱅크)이 우리에게 여전히 필요하고, 산업은행에 그 역할을 맡기려면 정책금융공사와 분리돼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주 맞짱토론에서는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 통합에 대한 찬성과 반대 측의 논리를 소개한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찬성 - 불필요한 중복경쟁 비효율…정책금융 통합해야 효과 커

정부가 운영하는 정책금융기관 체제 개편 태스크포스(TF)에서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 등을 다시 통합할지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 부진으로 조선, 건설 등 대표적인 대기업의 부실화가 심화되고 있어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창조경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도 정책금융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할 것이란 진단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되짚어 보면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약속했다가 정책금융으로 회귀하는 것, 특히 양 기관의 통합론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 하나 따져보면 근거가 약하다.

정책금융공사와 산업은행을 합치하는 것이 좋으냐 여부는 △통합의 가능성 △자금조달의 효율성 △금융수요자들에 대한 정책금융의 편의성과 이용가능성 △부실대출 등 신용관리 및 정책목표의 달성 가능성 등에 따라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쟁점은 양 기관의 통합이 정책금융의 효율성과 금융소비자(기업)들의 편익을 증진시키느냐 여부다. ‘슈퍼 갑(甲)’의 탄생으로 중소·중견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게 반대론자들의 논지다.

코스피·코스닥·선물거래소…통합했어도 기능 위축안돼


경쟁이 필요한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는 ‘정책금융’을 하는 곳이다. 둘 다 정부의 신용을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해서 중소·중견 기업에 낮은 금리로 지원하는 것이 목표라면, 굳이 여러 개 기관을 둬야 할 필요는 크지 않다. 정책금융 측면에서는 다양한 기관이 동일한 목표를 두고 경쟁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 하나의 기관에 기능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복된 기능을 가진 기관을 통합한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거래소 통합이 그런 예다. 코스피거래소, 코스닥거래소, 선물거래소는 별개의 기관이었다가 통합해 오늘날 한국거래소가 됐다. 이 통합이 각 거래소의 기능을 위축시켰다고 평가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각 거래소의 기능을 심의하고 관리하는 감독기구도 별도로 있으면서 전산시스템과 경영관리 등의 공동기능만 공유하고 있다.

두 기관을 통합한다고 반드시 완전히 한 몸을 이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정책금융 강화라는 큰 목표 아래 양 기관의 기능을 조정하는 수준에서 통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 정책 목표에 따라 별도의 투자심의 기구 등을 운영할 수 있다. 별도의 회계나, 방화벽에 준하는 독립회계를 보장하는 방법도 있다.

현재 중소기업과 신성장동력을 위한 정책금융 기관은 이 두 기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용보증보험, 기술신보, 기업은행 등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선택이 크게 제한될 이유도 없다.

지금도 산업은행, 정책금융공사, 다른 정책금융기관들의 기능 중 상당수는 중복돼 있다. 최근 창조경제를 위한 지원 펀드를 각 정책기관이 앞다퉈 내놓는 것이 그런 예다. 정부에 존재를 알리기 위해 공사마다 수천억원의 펀드를 조성하는 중이다. 정책금융의 과잉 경쟁이 부채 증가로 이어져 일본의 장기침체를 불러왔던 것을 기억한다면, 방만하고 중복적인 정책금융기구들은 조정하는 것이 옳다. 조정시에는 자금 조달, 정책개발 및 연구기능, 전산 등 인프라면에서 효율성을 증대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은 분리되면 각자의 이해와 생리에 따라 비대화한다. 정책금융공사의 인원은 3년 만에 4배로 늘었다. 이러한 조직의 성장이 기능 성장으로 인한 것인지, 공공 조직의 생리상 나타나는 것인지는 살펴볼 일이다.

통합 가능성과 관련해 최근 가장 이슈가 됐던 것은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역진방지 조항이다. 일부 반대론자와 신중론자들은 역진방지 조항 때문에 민영화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은 통합의 모양에 따라 해법이 달라질 수 있다. 민간 영역과 겹치는 자회사를 시장에서 매각하고, 산은의 정책금융 기능만 정책금융공사와 통합한다면 충분히 역진방지 조항을 피해갈 가능성이 열려 있다. 역진 여부는 지배구조 그 자체가 아니라 개방의 정도에 미치는 영향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벽 허물고 통합 서비스 제공…창조경제 추세와도 일맥상통

이외에 정책자금 조달의 효율성을 따져본다면, 두 기관이 분리돼 있을 때와 합쳐져 있을 때 중 어느 한 쪽이 특별히 신용도 측면에서 더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경우 자금조달 비용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 양 기관의 통합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정책금융공사의 무수익자산으로 인해 통합 후 자기자본비율이 저하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상세히 따져보면 산업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1.4~1.6%포인트가량 하락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약간의 증자나 부실대출 축소로도 충분히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책금융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고, 근본적인 성장 잠재력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사회복지에 대한 기대와 수요도 급증하는 중이다. 정책금융 규모는 경제성장률이 낮을수록 커지는 U자형 관계를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극도의 저성장기에는 단기적 정책금융의 수요도 커진다. 새 정부가 지향하는 ‘창조경제’에 맞춰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정책금융의 수요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양 기관의 통합은 정책금융의 역할 강화라는 시대적인 과제에 부응한다고 볼 수 있다. 또 ‘벽을 허물고 통합된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 목표에도 부합한다. 별도의 조직은 별도로 움직이는 것이 변함없는 조직의 생리다. 통합 반대 논리의 대부분은 국민과 금융소비자의 관점보다는 조직의 이해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이 논의도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병태


반대 - 대형 글로벌 투자은행 필요…産銀, 국가대표 IB로 키워야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정책금융과 정책금융기관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퇴조했기 때문이다. 그 대안으로 유능하고 적극적인 정부가 있어야만 시장경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 4.0이 등장하고 있다고 영국의 경제평론가 아나톨 칼레츠키는 분석하고 있다.

자본주의 4.0은 정부와 시장이 모두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초해 두 주체를 서로 협력하는 관계로 인식한다.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의 한계를 보면서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졌다. 박근혜 정부가 정책금융 체계 개편 작업을 진행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힌국의 중장기 금융시스템 전략을 고려한다면 ‘역내에서 중추적인 역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역할’을 할 은행계 대형 투자은행(CIB 메가뱅크)이 필요하다. 금융위기가 누그러진 이후 금융회사에 대한 자본 규제와 행위 규제, 금융소비자 보호 움직임이 강화되고 국가 간 공조 체제도 구축되고 있다.

하지만 금융의 위력은 크게 줄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중심 금융자본의 영향력과 파괴력도 그다지 위축되지 않을 전망이다. 금융산업 및 금융상품은 더 복잡해지고, 금융시장의 복합성과 전문성도 정보기술(IT)의 발전과 함께 증폭되고 있다. 개방형 경제를 지닌 한국은 대형 CIB 없이 경제 안보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정산업의 정부보조는 불공정 무역 소지 있어


따라서 한국 금융시스템의 전략 관점에서 산업은행은 중장기적으로 기업금융과 투자금융에 특화한 세계적이면서 지역적인 메가뱅크로 진화해야 한다. 독일의 KfW가 정책금융공사의 전형이었듯 산업은행의 전형은 민영화된 프랑스의 BNP파리바로 봐야 할 것이다. 산업은행은 직접적으로 정책금융에 참여하지 않는 금융기관으로 진화하고, 정책금융의 사령탑 기능은 점진적으로 정책금융공사에 넘기는 것이 옳다.

은행 중심 금융시스템을 고수하는 독일도 국가대표 CIB로 도이치뱅크를 가지고 있다. 다만 국내 소매금융의 포화 상태를 고려할 때 산업은행이 BNP파리바처럼 소매금융에 직접 진출하는 것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이다.

산업은행은 사회기반시설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기업 구조조정, 그리고 해외 진출 금융지원 부문에서 쌓은 투자은행(IB) 경험이 있다. 국내 금융회사 중 글로벌 은행 간 시장, 외환시장, 금리스와프 시장, 신용파생상품 시장 등에서 트레이딩과 시장 조성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본과 인력 경험을 가진 곳은 산업은행 외에는 없다.

한국이 BNP파리바나 도이치뱅크 같은 대형 CIB를 갖지 않겠다고 한다면 산업은행을 정책금융 업무 중심의 금융기관으로 되돌리는 전략에 큰 이론을 달기 어렵다. 하지만 중장기 금융시스템 전략상 ‘역내에서 중추적이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대형 상업·투자은행’이 중요하다면 산업은행이 그 길을 가야 한다.

산은의 민영화를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프랑스 정부는 아직도 BNP파리바의 최대주주로 현재 주식 보유율은 17%다. 중요한 것은 조직 개편과 인력 보강, 그리고 각 영업단위의 경영 전략이다. 정책금융 환경의 진화도 정책금융공사의 산업은행으로의 복귀를 어렵게 한다. 특정 산업에 대한 정부 보조나 직접 대출은 자유무역협정(FTA),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다국적 협약에서 불공정 무역 행위로 간주하는 추세다. 전대(온렌딩)와 사모펀드(PE)에 투자하는 방법 등의 간접 지원만이 무난한 정책금융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정책금융이 필요한 사업에 대해 정책금융공사가 조율과 지원을 맡고, 산업은행은 시장성 업무를 맡는 접근 방법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대안이다.


정책금융공사 역할은 기업 '원스톱 금융센터'로

중장기적으로 정책금융공사도 온렌딩 영역에 안주하기보다 적극적인 고객관리 영업 전략을 가져야 한다. 캐나다 정책금융기관 역할을 하는 BDC의 핵심 인력은 컨설턴트들이다. 고객 회사의 생애주기 전체에 관한 자문과 자금 지원 업무를 맡는다. 해외 시장 진출시 무역 지원 업무와 자금 공급 관련 자문도 한다.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도 돕는다.

정책금융공사의 현장 직원들도 포트폴리오 매니저나 자산관리 매니저, 벤처캐피털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장기 투자자라는 관점에서 보면 프라이빗에쿼티(PE) 투자자와도 같다. 정부도 정책금융이 초기 창업기의 기업에 모험자본을, 안정기로 진입한 곳에는 외부 충격에 대응할 자금을, 성숙기에 들어선 기업에는 M&A를 지원하는 등 기업의 생애주기별 맞춤 지원을 정책금융 패러다임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책금융공사가 캐나다의 BDC와 같은 모델로 진화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정책금융의 당위성은 정부의 산업정책 역할과 금융시장 위험관리 역할에 있다. 투자와 영업의 방향성을 기업 생태계가 제시할 수도 있고, 정부가 제시할 수도 있다. 스페인의 대항해 전략은 민간의 이니셔티브를 정부가 지원한 반면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대항해 전략은 정부 의지가 선제적으로 작동한 경우다. 결과적으로 두 국가 모두 불리한 후발자 지위에서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정책금융기관은 공공성과 수익성이라는 이해상충적인 두 가지 목적을 추구하는 금융기관이지만 모순을 예술로 탄생시킬 수 있는 창의적 조직으로 체질 개선을 해 나가야 한다.

산업은행법은 이미 개정됐고, 정책금융공사가 신설돼 산업은행과 조직 분할도 완료됐다. 산업은행은 CIB 메가뱅크를 지향하고 정책금융공사는 대내 정책금융기관으로 계속 발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가 일관된 입장을 갖고 산업은행의 IPO를 추진하고, 정책금융공사는 창조경제를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면서 경영 내실화에 진력하기를 기대한다.

박연우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읽을 만한 자료

▷산업은행 민영화 및 한국개발펀드(KDF) 설립방안, 금융위원회 설명자료, 2008년 6월
▷금융선진화를 위한 비전 및 정책과제, 정책조사보고서 2010-03, 이병윤 등 공저, 한국금융연구원·자본시장연구원·보험연구원, 2010년 4월
▷산은민영화 관련 주요 이슈, 금융연구, 윤석헌, 2011년 12월 ▷정책금융 규모 추정 연구용역, 중소기업연구원·이종옥,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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