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우려되는 '금융의 정치화'

입력 2013-07-17 17:22
수정 2013-07-17 20:46
백광엽 금융부 차장 kecorep@hankyung.com


“우리가 칼을 휘두르긴 했지만, 칼자루를 쥐어준 사람이 따로 있는데 상처받을 일이 뭐 있겠어요.”

한 금융계 인사가 이장호 BS금융 회장 퇴진을 압박해 ‘관치 금융’이라는 비판에 시달린 금융당국 고위간부를 위로하려다 들은 말이다. ‘마음 고생 많으셨겠다’는 인사에 그 당국자는 ‘우리는 손해본 게 없다’는 반응을 보이더라며 씁쓸해했다. 칼자루를 쥐어준 높은 분에게 ‘점수’를 땄다는 듯한 태도였기 때문이다.

한국 금융의 후진성을 얘기할 때 ‘관치 금융’이란 말을 쓴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노라면 이제 그 용어도 접어야 할 것 같다. ‘관치’라는 말로 담아내기 힘들 만큼 퇴행적 움직임이 많아서다. 안하무인의 자세와 성난 얼굴을 감추지 않고, 위만 바라보는 당국자의 모습에서 ‘정치 금융’ 시대의 도래가 감지된다.

'관치' 넘어 '정치'로 치닫는 당국

관치는 잘못이지만 ‘대의(大義)를 위해 나를 따르라’는 엘리트적 리더십의 측면이 있다. 시대가 부여한 악역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일말의 충정도 있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대놓고 말했을 때 밉지만은 않았던 것도 그런 이해가 있어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관료들은 관치마저 포기하고 ‘정치’로 달려가고 있다. 금융계 인사들도 국회나 청와대로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

정치판은 정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실에 대한 왜곡과 선동도 다반사인 비정한 동네다. 시장이 추구해야 할 합리성이나 효율성과는 속성상 상극이다. “정치인의 품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제도가 잘못돼 있기 때문”이라는 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뷰캐넌의 진단이다. 뷰캐넌은 도덕심이 낮은 정치인과 관료일수록 승진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이론을 전개했다. 그런 관료들이 출세한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입증했다. 경쟁상대가 없고 도산 걱정이 없는 독점자인 탓에 무사안일주의와 무능에 빠지기 쉽다고도 했다.

금융 정치화의 폐해는 쉽게 목격된다. 우선 국민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행태가 정치를 닮아 간다. 인사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빗발치는 비난에도 ‘모피아’들의 자리 나눠먹기는 더 기승을 부린다. 정치인들의 인사 개입도 노골성을 더해 간다. 우리금융 KB금융 농협금융 등 최근 수장이 바뀌며 인사가 한창인 곳은 조그만 자회사 사장 선임에도 정치인이나 청와대 인사 배후설이 빠지지 않는다. 시장에선 “정권이 바뀌어 큰 장이 섰지만, 정작 금융 전문가들이 설 자리는 없다”는 체념과 원성이 넘친다.

정치에 종속되면 미래는 없어

계파 보스의 교통정리를 기다리는 정치인처럼 정책 결정 때 하명만 기다리는 행태도 뚜렷하다. 현안인 정책금융기관 재편 문제는 효율적인 기능을 고민하기보다 로비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몇 달 동안 머리를 맞대 내놓은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설치 안도 대통령 질책 한마디에 원점으로 회귀했다. 한 번 더 코드가 빗나가면 자리가 위태로워질 관료들은 보신주의로 기울었다.

그 결과로 금융정책은 방향을 잃고 있다. ‘소비자 보호’와 ‘창조 금융’이라는 도그마적 명제가 모든 이슈를 압도할 뿐, 금융산업에 대한 비전과 철학은 찾아보기 어렵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얼마 전 금융지주 회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새 정부가 금융을 홀대한다는 시각은 오해”라고 했다. 7% 선인 국민 경제 내 금융산업의 부가가치를 10년 내 10%로 높이기 위한 계획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어떤 묘안이 나올지 현재로선 회의적이다. 정치의 종속변수로 전락한 금융에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백광엽 금융부 차장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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