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누명 쓴' 옥살이 26억 배상 판결

입력 2013-07-16 15:48
군사독재 시절 경찰 간부의 딸을 살해한 누명을 쓰고 15년간 옥살이를 한 정원섭(79)씨가 국가로부터 26억여원을 배상받게 됐다.

이번 '억울한 옥살이'는 유신헌법 선포 3주 전인 1972년 9월27일 발생한 사건으로 춘천경찰서 파출소장의 아홉 살 난 딸이 춘천시 우두동 논둑에서 성폭행당한 뒤 숨진 채 발견된 것.

내무부는 이 사건을 '4대 강력사건'으로 규정하고 10월10일까지 범인을 잡지 못하면 관계자들을 문책하겠다는 '시한부 검거령'을 내렸었다.


경찰은 30여명의 용의자를 불러 수사한 끝에 피해자의 집에서 200여m 떨어진 만화가게 주인 정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당시 정씨는 "사건 당일 피해자가 만화방에 온 적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정씨는 경찰관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검사에게 범행을 허위로 자백, 경찰은 정씨와 검사의 면담을 몰래 녹음한 뒤 검거시한인 10월10일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연필과 빗을 증거로 제시했으며 당시 아홉 살이던 아들은 연필이 자기 것이라고 말했다. 가게 종업원도 가혹행위를 당한 뒤 빗의 주인은 정씨라고 진술했다.

정씨는 검찰에서 진술을 번복해 범행을 부인했지만 강간치상과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기관이 결정적 물증으로 내세운 길이 15.8㎝짜리 파란색 연필은 재판에서도 쟁점이 됐다.

범행 현장의 최초 목격자 이모씨는 1심 재판에서 "현장에서 목격한 연필은 누런 빛깔이었다"고 말했다. 정씨의 부인은 "경찰이 아들의 필통을 가져오라고 해서 갖다 준 일이 있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위증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구속 상태로 법정에 다시 나와 파란색 연필을 봤다고 말을 바꿨다. 정씨는 결국 이듬해 11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그는 15년여를 복역한 뒤 1987년 성탄절을 하루 앞두고 모범수로 가석방됐다. 정씨는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과 2011년 무죄를 확정한 재심 판결을 근거로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박평균 부장판사)는 정씨와 그의 가족 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26억3752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구금 1년도 안 돼 아버지가 충격으로 사망했고 가족들도 주위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동네를 떠나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며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위로했다.

춘천지법은 2008년 정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며 "피고인이 마지막 희망으로 기댄 법원마저 적법 절차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부족했고 피고인의 호소를 충분히 경청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고 사죄한 바 있다.

한경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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