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두뇌경쟁서 앞서 가려면 개발결과 아닌 '연구'를 강화해야
정부 지원, 대학 노력 절실한 이유
이제민 <연세대 교수·경제학 leejm@yonsei.ac.kr>
최근 영국의 주간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바다거북’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언뜻 보면 환경 이야기 같은데, 실제로는 중국 유학생들 이야기다. 개혁·개방 이후 미국 유럽 등지로 떠난 중국 유학생들이 2000년대 들어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이들에게 해외에서 돌아왔다고 해서 ‘해귀(海歸)’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것이 바다거북을 뜻하는 ‘해귀(海龜)’와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그들을 바다거북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중국 유학생들의 모습은 두 가지로 갈린다.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인재들은 중국에 돌아가려 하는 데 반해 우수한 인재는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예컨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뒤 5년까지 미국에 남아 있는 비율을 보면 멕시코인 32%, 한국인 41%, 인도인 81%에 비해 중국인은 92%다. 큰 해귀(海龜)들은 아직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왜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이코노미스트는 그 요인으로 아직도 요원한 민주주의, 관료의 부패, 깨끗한 공기와 물조차 얻기 어려운 환경 문제 등을 들고 있다. 반면 중국 정부는 이들을 돌아오게 하려고 적극 노력하고 있다. 공산당 중앙조직부가 직접 나서서 각 성 지도자들과 대학 총장들에게 총력을 기울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그런 노력이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 성공할 것이다. 무엇보다 선례가 있다.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정부가 적극 노력한 결과 우수한 인재들이 대거 돌아왔다. 한국은 그렇게 해서 개도국 중에서 최초로 ‘두뇌유출’을 되돌릴 수 있었다. 권위주의 정치와 관료의 부패, 나쁜 환경은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지금의 중국이나 그때의 한국보다 지금의 한국이다. 한국은 불행하게도 그때 되돌렸던 두뇌유출이 다시 시작됐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 1997년 외환위기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과학·기술자가 대거 해고되고, 위기 후 올라간 환율로 소득 보상이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우수 인재를 돌아오게 하는 정부 정책이 동력을 잃었기 때문 아닌가. 과거에 그런 목적으로 만든 시스템이 붕괴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때 두뇌유출을 되돌리는 데는 국책연구원이 앞장서고 기업 연구소가 뒤를 이었다. 그 둘을 주축으로 하는 연구개발 체제는 아직 가동하고 있다.
문제는 그런 체제가 한계에 달했다는 것이다. 연구개발비 자체로만 보면 국내총생산(GDP)의 4%에 육박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지만, 대부분 연구개발 활동은 최종개발단계에 치우쳐 있다. 그 결과 정부 지원은 이미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민간 기업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구축(crowding out)’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한국이 세계적 두뇌 싸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최종개발보다 ‘연구’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앞으로는 대학이 우수 인재를 돌아오게 하는 주역을 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이 어떻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재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재원은 어디서 나오는가. 일단 정부가 제공해야 한다. 한국은 여느 선진국에 비해 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이 빈약한 구도를 고쳐야 한다. 물론 대학도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최근 1~2년간 한국 대학은 비싼 등록금과 낮은 취업률로 논란의 대상이 됐다. ‘반값 등록금’ 같은 정치 구호도 나왔다. 그런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간과한 것이 우수 인재가 돌아오게 하는 데에 대학이 해야 할 역할이다.
정치건 경제건 결국은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세계적으로 우수 인재 쟁탈전이 전개되고 있는데, 한국이 거기서 진다면 그 결과는 중국 같은 나라에 따라잡히는 것뿐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정부와 대학이 분발해야 한다. 그런 노력만 있다면 한국은 중국보다 조건이 유리하다. 정치는 민주화돼 있고 공기와 물도 더 깨끗하다. 바다거북에게 중국보다는 한국이 더 ‘청정지역’인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런 조건을 활용하기 위한 정부와 대학의 노력이다.
이제민 <연세대 교수·경제학 leejm@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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