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과잉 보도에 속타는 아시아나항공

입력 2013-07-11 17:28
수정 2013-07-11 21:00
전예진 산업부 기자 ace@hankyung.com


“한국 기자들은 다들 항공 전문가인 것 같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충돌 사고와 관련한 국내 언론 보도를 접한 한 외국통신사의 서울 주재 특파원이 보인 반응이다. 그는 “현장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한국 언론들은 사고 원인을 시사하는 듯한 기사를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

며칠째 아시아나항공 충돌 사고와 관련한 추측성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다음날 해당 여객기 기장의 비행경력, 사고기 정비 내역 등 사고 원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들이 집중 보도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며칠째 서울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와 샌프란시스코에 기자들이 몰려와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공개하기 조심스러운 내용도 기자들의 집요하고 거센 요청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설명해야 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과잉 경쟁 보도에 더욱 기름을 끼얹은 건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다. NTSB는 사고기 조종사의 대화 내용과 블랙박스 관련 정보를 잇따라 공개했다. 상당히 이례적이다. 세계 최대 조종사노조단체인 국제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가 “전례 없는 부적절한 조치였다”는 비판 성명을 낼 정도다.

항공 전문가들은 과잉 정보 공개로 조사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항공기의 고도 및 속도와 관련한 정보가 알려지면서 각종 억측이 난무하고 있어서다.

벌써부터 부분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일부 외신들은 조종사 실수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항공 사고의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어서 신중한 조사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마치 100% 조종사 과실인 듯한 보도가 잇달아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과잉경쟁 보도는 부작용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섣부른 보도가 잇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이 사태를 수습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언론이 마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경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관련 사진과 영상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간 점을 염두에 둔 지적이다.

SNS에 편승해 전체적인 스토리가 아닌, 독자들의 눈길만 잡아끌 수 있는 단편적이고 감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적어도 언론은 어떤 정보를 어떻게 실을지 SNS보다 더 고민해야 한다.

전예진 산업부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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