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풍속도 - 임대단지로 전락한 수도권 공단
'한지붕 8공장' 나누기
시화공단 임대공장 6526개…10년새 4배 이상 늘어
변두리 영세업체 몰려
임차료 고공행진 속 생산·수출은 큰 폭 늘어
경기 시화 산업단지(공단)에 있는 6600㎡(약 2000평) 규모의 한 공장 안에는 무려 8개나 되는 작은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칸막이를 한 소규모 공장들은 선반으로 쇠를 깎아 금속제품을 만드는 곳에서부터 용접이나 밀링 등으로 가공하는 업체 등 다양하다. 전체 공장 소유자인 K사장은 임대사업자다. 그는 “불황이 길어지면서 일감도 별로 없고 수주해도 남는 게 없어 ‘차라리 세를 받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공장임대 사업자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임대단지로 전락한 공단
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시화공단 임대사업자는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2977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해오던 제조업을 포기하고 공장을 80~200평 규모로 나눠 임대하고 있다.
공장 쪼개기 임대가 늘어나면서 시화산업단지는 입주기업 수가 지난 4월 1만146개로 사상 처음 1만개를 넘어섰다. 이 중 임차공장이 6555개로 전체의 64.6%에 달한다. 10년새 4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임차공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파르게 늘기 시작했다. 2008년 말 3812개였던 시화공단 임차공장이 4년여 동안 72.0% 늘었다. 시화공단 면적은 그대로인데 공장 수만 늘어 개별 공장의 평균 사용면적은 그만큼 쪼그라들었다.
인근 반월공단과 남동공단도 비슷하다. 반월공단은 2008년 말 48.1%였던 임차공장 비율이 지난 4월 말에는 62.1%(3967개)로, 남동공단은 56.2%에서 66.7%(4604개)로 상승했다.
○수도권서 밀려난 기업 입주
공단에 들어오는 기업들은 서울 변두리나 영등포·부천 등의 재개발 여파로 밀려난 영세공장이 대부분이다. 입주 기업들이 급증하면서 공단의 작업환경은 나빠지고 있다. 사무실을 만들 공간이 없어 컨테이너를 용접해 공중에 매달아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 비교적 쾌적한 구내식당은 사라지고 컨테이너로 된 함바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영세 공장들이 공단에 들어서면서 이곳에서 일하는 근로자 수도 급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2008년 말) 8만9676명이었던 시화공단 근로자 수는 지난 4월 말 11만1257명으로 24% 늘었다. 대중교통이 불편해 근로자 대부분이 자가용 승용차로 출퇴근하면서 산업단지 주변은 승용차가 거의 점령했다. 트럭이나 트레일러가 공장 안으로 제대로 진입하지 못하는가 하면 공장문 앞에 주차한 승용차 때문에 분쟁이 일기도 한다.
○임차료는 고공행진
시화공단 임차료는 3.3㎡당 월세가 3만~3만5000원 수준이다. 시화공단에서 기계를 제조하는 S사 사장은 “1년 전까지만 해도 월세가 3.3㎡당 2만5000원이었지만 서울 쪽에서 내려오는 업체들이 늘면서 올해 3만원으로 20%가량 올랐다”고 말했다. 남동공단 공장 임차료는 지난해 10~20%가량 급등해 3.3㎡당 3만5000원 선으로 오른 뒤 그 시세를 유지하고 있다
공장전문 중개업체인 우일부동산의 손환성 사장은 “수도권 영세공장들은 인력확보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가기 힘들어 인천 가좌나 남동 반월 시화 등을 찾고 있다”며 “공장 분할 후 임대사업은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생산·수출은 활발
공장 규모는 영세해졌지만 공단 전체의 생산 활동은 활발해지고 있다. 시화공단의 생산액은 2008년 22조816억원에서 2012년에는 35조7921억원으로 62.1% 증가했다. 남동공단은 이 기간 중 15조 4019억원에서 22조90억원으로 42.9%, 반월공단은 23조2096억원에서 41조5508억원으로 79% 각각 늘었다.
수출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시화공단의 수출은 36억5500만달러에서 47억9900만달러로 31.3% 증가했다.
공단의 생산·수출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늘어난 것은 ‘경기 침체의 역설’이다. 건설과 기계 조선 등 주력 업종이 깊은 불황에 빠지자 임대공장이 늘어났고, 수도권 재개발이 활발해지면서 갈 곳을 잃은 영세공장들이 자리를 메운 탓이다. 수도권 산업단지의 영세화가 생산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곽의택 소공인진흥협회 회장은 “서울 시내의 작은 임차공장들이 들어설 수 있는 임차공장 단지가 조성돼 저렴한 가격으로 빌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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