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규 "오래 전 뿌린 씨앗, 하나둘 싹 터…일진그룹 신성장 동력 더 나올 것"

입력 2013-07-08 17:22
수정 2013-07-09 04:36
CEO 투데이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디스플레이·머티리얼즈 등
성공적 사업다각화 달성
일진전기 매출 부진 만회
올해 매출 3조 달성 자신



일진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일진전기 매출이 2010년 1조447억원에서 지난해 9873억원으로 뒷걸음질쳤다. 건설경기 침체 등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하지만 일진그룹 전체 매출은 이 기간동안 2조원에서 2조5000억원으로 25% 증가했다. 신사업으로 꾸준히 추진해온 일진디스플레이와 일진머티리얼즈 등 다른 계열사들이 일진전기의 부진을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의 성과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견그룹의 숙제인 사업다각화 문턱을 성공적으로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맏형 넘어서는 아우들

허진규 회장(사진)이 1968년 창업한 일진전기는 2010년까지만 해도 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지금은 40%에 약간 못미치는 정도로 그 비중이 줄었다. 전선업 불황에 발목이 잡힌 탓도 있지만 다른 계열사들의 매출이 크게 늘어난 것이 더 큰 이유다.

예컨대 스마트폰 터치스크린패널(TSP)을 만드는 일진디스플레이 매출은 2010년 1139억원에서 2012년 5965억원으로 5배 넘게 늘었다. 일진디스플레이는 경기 평택 어연산업단지에 있는 제1공장 옆에 800여억원을 들여 연면적 3만3575㎡ 규모(지하 1층, 지상 3층)의 제2공장을 8일 건립했다. 제1공장보다 1.5배 큰 제2공장은 노트북PC용 터치패널과 플렉서블 터치패널 등을 생산할 계획이다.

인쇄회로기판(PCB)의 핵심소재 ‘일렉포일’이 주력인 일진머티리얼즈는 이 기간동안 매출이 2999억원에서 3932억원으로 31% 증가했다. 두 회사 매출 합계액(9897억원)은 지난해 처음으로 일진전기를 넘어섰다. 전선을 주로 만들던 일진그룹이 이제는 첨단 전자부품·소재를 만드는 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오래전 뿌린 씨앗 나오는 것"

서울 마포에 있는 일진그룹 본사에서 최근 기자와 만난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은 “신성장 동력 사업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뛰쳐나오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오래전 뿌린 씨앗이 잠복기를 거쳐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허 회장은 ‘전기 신호를 오가게 하는 소재’인 일렉포일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전량 일본에서 수입하던 일렉포일을 일진머티리얼즈가 20여년에 걸쳐 국산화했다. 그는 “일렉포일은 만들기가 굉장히 어렵지만 용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성장잠재력이 크다”고 평가했다.

일진그룹의 모태인 일진전기를 뛰어넘을 만한 후보군은 일진디스플레이나 일진머티리얼즈 말고도 더 있다. 일진LED, 일진제강, 알피니언메디칼시스템도 차세대 성장 사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일진LED는 지난해 매출 370억원에서 올해 1000억원을 예상하고 있고, 심리스(이음새가 없는) 파이프를 만드는 일진제강은 전년 대비 2배가 넘는 3000억원을 매출 목표로 삼고 있다. 초음파진단기가 주력인 알피니언메디칼시스템도 전년의 2배를 웃도는 4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증권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허 회장은 “올해는 그룹 매출이 3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자신했다.

○부품·소재 국산화에 주력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나온 허 회장의 꿈은 원래 학자였다. ROTC 1기로 입대해 총포와 탄약 등을 개발하는 육군본부 병기감실에서 근무하던 그는 열악한 국내 공업 수준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기업인으로 변신하겠다고 결심했다. 창업전선에 뛰어든 뒤 부품·소재 국산화에 매달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가 창업하거나 인수한 일진그룹 계열사들은 이후 동복강선, 배전금구류, 공업용 다이아몬드, 일렉포일 등을 연이어 개발했다. “국내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는 기술은 어떡하든 개발한다”는 게 허 회장의 철학이다.

그는 “심리스 파이프를 처음 국산화하려고 할 때도 지인들이 극구 말렸지만 지금은 잘하고 있다”며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지 않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신사업을 몇 개 준비하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 알면 안되기 때문에 말은 하지 못하겠다”며 웃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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