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터키·북아프리카 끝나지 않는 '아랍의 봄'
이집트 무르시 세력 축출
원리주의에 반감 폭발
튀니지·시리아도 '불안'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겪으면서 지난 3일 1년 만에 권좌에서 밀려났다. 2011년 아랍 전체를 휩쓴 ‘아랍의 봄’ 사태 이후 이집트는 물론 튀니지, 바레인, 리비아, 예멘,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북아프리카 국가들은 크고 작은 시위와 내전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 같은 이슬람 문화권인 터키에서도 최근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범이슬람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 혹은 내전의 배경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이면에는 ‘이슬람 원리주의’와 ‘세속주의’와의 뿌리 깊은 갈등이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겉으로는 ‘민주화’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종교 갈등이나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결국 대규모 시위로 정권이 전복된 뒤에도 사회가 안정되는 것이 아니라 혼란과 갈등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리주의 대(對) 세속주의
이집트에선 아들리 만수르 헌법재판소 소장이 4일 임시 대통령에 취임했다. 만수르 임시 대통령은 무르시 전 대통령을 지지하던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에도 “국민의 일부로 국가 재건에 참여할 기회를 주겠다”며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냈다.
실제 움직임은 달랐다. 이집트 검찰은 이날 무슬림형제단 지도부 200여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무르시 세력 축출에 나선 것이다. 무르시 지지자들은 카이로 나스르시티에서 집회를 열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을 강제로 몰아내는 것이 민주주의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독재 대 반독재(민주화) 구도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원리주의 대 세속주의 갈등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 전반에 걸쳐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통해 이슬람 공동체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하는 종교적 이념을 뜻한다. 석유 등 자원을 노린 서구 열강들이 잇따라 아랍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최근에는 특히 외세를 배격하고 강한 이슬람을 만드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아랍권에 퍼져 있는 원리주의 계파 중 가장 큰 단체다. 회원 및 지지 세력이 100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세속주의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자는 움직임이다. 일견 근대적 민주주의 개념에 가까워 보이지만,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이슬람 세력에 대응하는 집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여러 국가의 군부 세력이 세속주의에 속한 것도 특징이다.
원리주의와 세속주의 사이의 갈등은 이집트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터키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도 오랫동안 세속주의 체제에서 살아왔던 국민들이 원리주의 색채를 강화하려는 현 정부에 반발하면서 폭발한 결과다. 최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음주나 풍기문란 행위에 이슬람 율법을 기준으로 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자 시민들이 지하철역 앞에서 단체로 키스하며 벌인 ‘키스 시위’가 상징적 사례다.
○갈피 못 잡는 중동·북아프리카
그간 중동의 맹주 역할을 해온 이집트의 민주화 실험이 사실상 실패로 끝나면서 2011년 ‘아랍의 봄’을 겪은 다른 중동국가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튀니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상태다. 실제로 올초 세속주의 계열 야당인 민주애국자당 대표 초크리 벨라이드가 암살되면서 내전 직전의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벨라이드의 암살 배후에 집권 여당인 이슬람주의 정당 엔나흐다당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까닭이다. 일단 이슬람 정당이 세속주의 정당과 연합정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사태를 봉합했지만 언제 재발할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이번 이집트 사태에 대해서도 튀니지 정부는 ‘명백한 쿠데타’라며 군부 세력을 비난했다. 2011년 지루한 내전을 끝낸 리비아 상황도 불안하다. 무아마르 카다피의 장기 독재는 끝났고 지난해 민주적 선거를 통해 자유주의 정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원리주의 세력의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원리주의에서도 온건한 세력에 속한다. 만일 세속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은 뒤 경제를 살려내지 못하면 더 과격한 원리주의 세력이 들고일어나 정권을 전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속주의 자체에 대한 아랍 국민의 여론이 좋은 것만도 아니다. 세속주의 성향이 강한 군부가 사실상 수십년간 독재를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2년 전 ‘아랍의 봄’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 집권 기간이 대표적인 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많은 아랍 사람들과 전문가는 무슬림형제단의 영향력이 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그렇다고 군부가 커지는 것도 원치 않는다”며 “새 집권 세력이 경제를 살려내지 못하면 조만간 또 다른 갈등이 촉발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윤선/박병종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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