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 70년 '최대 위기'] 中·日, 금융지원 업고 수주 공세…홀로 뛰는 한국 잇단 고배

입력 2013-07-02 17:12
수정 2013-07-03 03:58
(3) 위기 고조되는 해외건설 수주

3년 공들인 24조 터키 원전, 일본 자금에 무릎
정부 말로만 정책금융지원 … 청사진도 못내놔
국내업체간 과당경쟁 … 예정가 50%에 수주도




#1.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5월 초 터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원자력발전사업 계약서에 서명했다. 정부와 업계가 3년간 공들인 220억달러(약 24조원) 규모의 초대형 터키 원전공사가 일본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한국은 2010년 6월 원전사업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때만 해도 일본과의 경쟁에서 한발 앞서 갔다. 하지만 해외건설 금융 경쟁력이 발목을 잡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 터키 수주가 교착상태에 빠지자 복지부동하는 정부 부처와 후진적 금융시스템을 크게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정부는 청사진도 못내놓고 있다.

#2. 시공능력평가 10위권인 A건설사는 지난해 중동에서 수천억원대 토목공사를 수주하고도 계약을 못할 뻔했다. 현지 정부가 발주한 안정적인 공사였지만 국내 은행들이 A사의 신용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공사의무이행 등을 보증하는 채권 발행을 거부해서다. 현지 금융기관의 지급 보증을 받고서야 가까스로 수주에 성공했다.

○후진적 해외금융에 대형 공사 실패

건설업계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건설시장 침체의 탈출구로 해외시장 공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일본 등 선진 업체의 자금·기술 공세와 중국 등 개발도상국의 가격경쟁력에 밀리며 수주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 지원 부재 속에 국내 업체 간 해외건설의 과당경쟁이 국내 건설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작년 말 ‘델리-뭄바이 산업벨트’ 사업에 45억달러의 개발자금을 투자하기로 인도 정부와 협약을 맺었다. 대신 이곳 현장에서 나오는 물처리·발전소 등 19개 인프라공사(사업비 1조2000억엔)는 모두 일본 건설업계에 넘기기로 약속했다. 일본에서는 미쓰비시중공업과 히타치 등 여러 기업이 수주경쟁에 나서고 있다.

해외건설 수주 1위 국가인 중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중국-아프리카 협력 정상회의’에서 200억달러 규모의 차관 지원계획을 발표한 이후 아프리카의 공항 철도 도로 병원 등 인프라 공사를 싹쓸이하고 있다.

국내 건설업계는 이들 경쟁국의 해외건설 지원체계 앞에서 번번이 수주 실패를 맛보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11년 400억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가 유일하게 범정부 차원의 성공적 지원 사례로 꼽힌다.

10억달러를 웃도는 대규모 사업은 정부 지원과 대규모 금융 조달이 필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건설사와 엔지니어링업체들이 각자의 자금력과 네트워크로 선진 건설사와 맞서는 상황이다. 올 들어 대규모 사업 수주가 뚝 떨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대형 건설사 해외수주 담당 임원은 “공적개발원조(ODA)와 금융 지원, 수주지원단 파견 등 유기적 해외건설 지원책이 아직도 걸음마 단계”라며 “국내 민간 금융사들도 해외건설에 대한 인식이 낮아 수익성이 높은 대형 프로젝트파이낸싱(PF) 수주는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과당경쟁으로 저가 수주는 증가

정부·민간 합작형 수주는 줄어드는 대신 국내 건설사 간 과당경쟁에 따른 저가 수주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올 들어서도 호주 철광석 광산개발 플랜트와 토목공사를 둘러싼 ‘덤핑수주 논란’으로 건설업계가 떠들썩했다. 19개월간 900여억원을 투입했던 P컨소시엄을 제치고 뒤늦게 참여한 S사가 10%가량 낮은 입찰가격(약 57억달러)으로 공사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국내 건설업계는 2009년 이후 중동에서 수주한 대규모 저가 플랜트 공사 때문에 당분간 실적 쇼크에 시달릴 전망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6개 대형 건설사의 2009년 이후 3년간 플랜트 수주 물량은 37조3000억원에 달한다. 2위 업체와 입찰가격 차이가 10% 이상 나거나 예정가의 50%를 밑도는 공사가 수두룩하다. 중동권 플랜트 실적이 많은 GS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이 지난 1분기 각각 5355억원, 219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년에 23조9000억원이 완공되기 때문에 ‘중동발 쇼크’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김민형 건설산업연구원 실장은 “건설 불황 극복과 단기실적 향상에 치중한 나머지 무리한 저가 수주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해외공사는 설계 변경이 잦고 예상치 못한 리스크가 많아 ‘제값 수주’도 안정적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혜정/이현일 기자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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