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덮친 증여세…상장된 모든 곳 '과세 리스트' 올라

입력 2013-07-01 17:13
수정 2013-07-02 00:42
뉴스 추적 - 지주사 주가 올랐다고 증여세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 등 6년 뒤 과세 파장

대주주, 지주사에 현물출자하고 신주 받아
신주 발행 직후 주가 크게 오르면 부과 대상
전문가들 "주가 따라 춤추는 복불복 증여세"


▶마켓인사이트 7월1일 오전 3시30분


국세청이 지주사 전환 때 주가 평가가 잘못됐다며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과 특수관계인에게 뒤늦게 증여세를 부과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서 회장뿐 아니라 지난 10여년간 지주회사로 재편한 기업 가운데 신주 발행 직후 지주사 주가가 급등한 기업의 오너들도 증여세 부과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서 회장이 제기한 조세 불복 심사청구에 대해 감사원이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다.

○6년 뒤 증여세 물린 국세청

재계에 지주사 전환 바람이 분 건 10년 전부터다. 정부는 순환출자 등으로 복잡하게 얽힌 그룹사들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기 위해 지주사 전환을 적극 유도했고, 2003년 LG를 시작으로 80여개 기업이 차례로 지배구조를 바꿨다.

전환 방식은 대체로 이렇다. 일단 주력 회사를 지주사와 사업 자회사로 쪼갠다. 오너 입장에선 지주사 경영권만 확보하면 모든 자회사를 거느릴 수 있는 만큼 자회사 보유 지분을 판 돈으로 지주사 주식을 사들인다. 이를 위해 오너는 보유 자회사 주식을 지주사에 현물출자하고, 그 대가로 지주사가 유상증자 형태로 발행하는 신주를 받는다.

아모레도 이렇게 했다. 거래를 마친 후 서 회장 측의 지주사(아모레G) 지분율은 31.7%에서 61.7%로 높아졌고 자회사(아모레퍼시픽) 지분율은 31.7%에서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상속증여세법은 이때 오너가 받은 신주가격이 시가보다 낮으면 그 차액에 대해 증여세를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대목에서 시작된다. 당시 증권거래법 하위 규정인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은 청약 5거래일을 기준일로 최근 1개월 평균주가, 최근 1주일 평균주가, 최근거래일 주가 중 가장 높은 가격을 기준 가격으로 삼도록 하고 있다. 아모레G도 이 규정에 따라 신주를 12만3800원에 발행했다.

그런데 상속증여세법에는 ‘상장사 주식은 평가기준일 이전·이후 각 2개월 종가의 평균으로 시가를 평가한다’고 명기돼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아모레G의 시가는 14만5100원이 된다. 신주를 발행할 때는 12만3800원이 ‘적법한 시가’였지만 이후 2개월 동안 주가가 오르면서 14만5100원이 새로운 시가가 된 셈이다. 국세청은 그 차액(주당 2만1300원)만큼 다른 주주들이 서 회장 측에 증여한 걸로 간주하고 과세했다.

국세청은 그동안 이런 차익에 대해 증여세를 물리지 않았다. 자본시장법과 상속증여세법이 충돌한 사안에 대해 과세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동안 정부가 재계에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적극 장려해온 점도 고려했다.

국세청의 입장이 바뀐 배경에는 감사원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감사원이 2011년 국세청 감사를 실시하면서 “현물출자를 통한 주식 인수 등 자본 거래에 대해 증여세를 엄격하게 부과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뒤늦게 지주회사 전환 기업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증여세의 경우 해당 행위가 일어난 지 10년(미신고 시 15년) 내에는 언제든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며 “아모레의 경우 추후 세무조사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에 세금을 물린 것”이라고 말했다.

○재수 없으면 내고 운좋으면 안 내

대다수 전문가들은 아모레에 대한 증여세 부과에 대해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상장 기업의 주가는 개별 기업의 실적뿐 아니라 글로벌 경기 상황과 자금시장 움직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며 “세금 부과 여부를 수시로 등락하는 상장 기업 주가에 연동시킨 건 ‘재수 없으면 내고, 운 좋으면 안 내도 된다’는 의미”라고 했다.

실제 2008년 9월 13만~14만원을 오르내리던 아모레G 주가는 한 달 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5만6100원으로 추락했다. 아모레퍼시픽이 이때 지주사로 전환했다면 증여세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B회계법인 회계사는 “신주 발행 후 딱 2개월 동안 주가가 올라 증여세를 냈는데 이후 급락해 대주주가 투자손실을 보면 ‘이익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과세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며 “반대로 신주 발행 2개월까지 주가가 떨어지다 3개월째부터 폭등한 기업의 대주주는 엄청난 투자수익을 냈는데도 증여세를 안 내는 모순이 생긴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대주주가 회사 주식을 처분할 때 주가 상승분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내는데 증여세까지 물리는 건 이중 과세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증여세를 내면 대주주가 추후 주식을 매각할 때 양도소득세에서 증여세를 공제해주는 만큼 이중 과세와는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제2의 아모레’ 나오나

재계에선 ‘제2의 아모레’가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증여세는 증여 행위가 발생한 지 최대 15년 이내면 물릴 수 있는데, LG그룹이 국내 최초로 지주사로 전환한 게 2003년인 만큼 증시에 상장된 모든 지주사 대주주들이 부과 대상이 될 수 있어서다.

국세청 관계자는 “특정 기업에만 적용되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다른 기업의 대주주도 기준에 부합하면 당연히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현재 얼마나 많은 기업이 조사 대상인지에 대해선 답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대주주가 각종 거래를 통해 얻은 이익에 대한 과세는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나갈 때마다 최우선으로 들여다보는 사안”이라고 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증시에 상장된 지주사는 모두 49곳이다. 이 중 전환 당시 발행한 신주가격보다 상장 전후 2개월 평균 주가가 높았던 기업의 대주주들은 증여세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2010년 6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KC그린홀딩스의 대주주도 최근 증여세 부과 통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을 장려하던 정부가 뒤늦게 증여세란 칼을 빼든 격”이라며 “기업들의 지주사 전환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형 회계법인 세무담당 회계사는 “현재로선 상속증여세법에 과세 근거가 적시된 만큼 신주 발행 후 주가가 크게 오른 기업의 오너는 증여세 부과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주가 산정을 놓고 서로 충돌하고 있는 상속증여세법과 자본시장법을 적절하게 손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윤/오상헌/임원기 기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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