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을 추진키로 하면서 대법원과 헌재 간 해묵은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재판소원은 법원 판결을 헌법소원 심판 청구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헌재는 최근 국회에 보낸 헌법재판소법 개정에 대한 의견서를 통해 허용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우리나라 사법 체계와 현실에 맞지 않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현행법상 원칙적으로 법원 재판에 대해선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없다. 헌재법 68조 1항이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 탓에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재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 사안에 대해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받아들이는 등 사
상 재판소원을 허용해 대법원과 갈등을 빚어 왔다. 예컨대 대법원은 조세감면규제법 조항을 놓고 세무당국과 세금 갈등을 벌인 KSS해운에 대해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하지만 헌재는 해당 조항에 한정위헌결정을 냈다. 대법원은 한정위헌결정을 근거로 KSS해운이 낸 재심청구를 다시 기각했다.
헌재 측은 행정처분에 의한 기본권 침해 등을 막고 권리 구제가 가능하도록 재판소원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법원은 재판소원을 받아들이면 사실상 4심제가 돼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이 침해되고 재판 진행에 비효율이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번주 맞짱토론에서는 재판소원에 대한 찬반 주장과 논리를 소개한다.
☞재판소원
법원의 판결을 헌법소원 심판청구 대상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현행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 탓에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찬성 - 기본권 침해 구제수단…헌재-대법 균형에 도움
헌법재판소가 출범한 때는 민주화 열풍이 거세던 1988년 9월이다. ‘4·19 혁명’으로 1960년 제정된 제2공화국 헌법은 헌재를 규정했으나, 이듬해 ‘5·16’으로 헌재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헌재 창립까지 그로부터 약 30년의 세월이 걸렸다. 우리 헌법은 ‘국가의 통치구조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규정한 최고 법규범’이라는 강학상(講學上) 개념과는 달리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그다지 기여를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헌재는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국가공권력의 국민 기본권 침해에 대한 구제라는 시대적 요청에 의해 태어난 것이다.
헌법소원심판제도는 공권력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 헌재에 구제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공권력은 입법·행정·사법작용을 두루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현행 헌재법 68조 1항 본문은 헌법소원의 대상인 공권력 중 ‘법원의 재판을 제외’라고 규정해 재판소원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재판소원 인정 여부는 나라마다 입법례가 다양하며, 학자와 실무 간 논쟁도 뜨겁다. 헌재는 “헌재법 68조 1항 본문의 ‘법원의 재판’에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도 내에서, 헌법에 위반된다”는 한정위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법재판-법원재판 의미 달라…큰 틀서 정치·입법 작용
재판소원 도입 반대 측의 주요 논거는 이렇다. ‘현행 헌법은 구체적 사건에 대한 재판에 관해 그 사법작용 권한을 법원에 전속시키고 있다. 대법원에 최종 심사권한을 두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으로 허용하면 법원에 전속된 사법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헌재가 제4심의 법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돼 대법원의 최고법원으로서 권한을 침해하므로 위헌이다.’
재판소원을 도입하면 재판소원이 폭주하고, 대법원 판단을 받은 재판을 헌재가 다시 판단하는 비효율적인 사법체계가 생긴다는 것도 반대 논리다.
이런 시각은 입법·사법·행정권이라는 고전적 권력분립 이론에 치우쳐 헌재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헌법재판의 본질이 기본적으로 사법작용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단순히 사법작용만으로 해석하기는 곤란하다. 정치·입법작용의 측면도 있다. 헌법재판을 3권 중 사법권에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도그마에서 벗어나 3권이 상호 견제·균형을 이루도록 조절하는 기능을 갖는 정치적 사법작용 내지 제4의 국가작용으로서 이해할 필요도 있다. 현 헌법소원제도는 가장 강력한 민주적 정당성을 갖고 있는 입법권(국회)을 통제하면서도, 민주적 정당성이 약한 사법권(법원)을 통제하지 못해 오히려 권력분립론에 어긋난다고도 할 수 있다.
헌법재판은 헌법적 문제에 관한 분쟁을 계기로 헌법의 의미와 내용을 해석하고 확정하는 헌법심이다. 반면 법원재판은 구체적인 법적 분쟁의 해결을 위해 법규를 적용하는 사실심과 법률심을 주요 임무로 하므로 재판소원 도입이 곧 바로 법원의 사법권 침해라고 보기 어렵다. 역할과 권한, 기능상의 차이를 감안한다면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하는 것이 4심제도를 인정하는 결과라고 볼 수 없다. 헌재가 대법원보다 권한과 지위가 높아진다고도 할 수 없다. 법원이 행정소송을 통해 행정권을 통제한다고 해서 행정부보다 우월한 지위를 갖는다고 할 수 없고, 헌재가 위헌법률 심사를 통해 입법권을 통제한다고 해서 국회보다 우월한 지위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재판소원 폭주로 인한 헌재의 업무 과중에 대한 우려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재판소원 도입 여부에 대한 논의 이후 고민해야 할 방법론적 문제다.
법령소원 위주 운영 벗어나…각종 행정처분 통제 효과
재판소원 도입은 3심제를 채택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대법원의 입장이나, 단순한 법개정의 문제가 아닌 헌법 개정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반대 측 태도는 수긍하기 어렵다. 헌법이 3심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이 헌법소원의 대상에 관해 법률에 위임(헌법 111조 1항 5호)했듯이 대법원을 제외한 각급 법원의 조직도 법률에 위임(헌법 101조 2항, 102조 3항, 110조 3항)돼 있다. 심급제의 조직이나 구성은 입법정책의 문제다. 예컨대 특허소송이나 선거소송은 현행법에서 2심제를 취하고 있다.
재판소원 도입은 재판 자체가 아닌 행정작용을 통제하는 데 더 큰 실익이 있다. 재판소원 배제로 인한 기본권 침해가 가장 많이 문제되는 행정작용(각종 행정처분 등)의 대부분은 헌법소원의 보충성(헌법재판소법 68조 1항 단서)과 결합해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 인해 법원의 재판 및 행정작용의 대부분이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돼 헌법소원은 주로 입법작용에 대한 통제, 즉 법령소원 위주의 기형적인 운영 행태를 보여 왔다. 재판소원 도입은 기형적 구조를 깨고, 공권력 침해에 대한 구제수단이라는 헌법소원 본연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 동안 헌법재판은 단순한 사법작용으로 이해되면서 대법원과의 역할과 권한에 대한 논란을 빚어왔다. 그러나 헌재 창립 후 25년간 많은 헌법이론이 정립됐고 헌법도 장식이 아닌 살아 있는 규범으로 자리잡았다. 헌재가 헌재법 68조 1항 본문에 대해 단순위헌이 아닌 한정위헌으로 결정한 것은 당시 대법원과의 갈등, 법적·제도적 장치의 미비, 헌재의 역사와 위상 등 정치적·사회적 여건이 성숙되지 못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타협안이었다. 그 결정 이후 16년이 지났다. 이제는 재판소원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할 때다.
한상현 <법무법인 제이 변호사>
반대 - 법원의 재판기능 훼손…비효율적 사법체계 발생
최근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제출한 헌법재판소법 개정에 관한 입법의견서 가운데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과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이다. 한정위헌 결정은 헌재가 법률 조항은 그대로 둔 채 법률 조항을 어떻게 해석하거나 어디에 적용하면 위헌이라는 식으로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기속력은 법원을 포함한 국가기관에 헌재 해석을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재판은 소송 당사자가 주장하는 사실 관계를 확정하고 확정된 사실이 일정한 법률 요건에 해당하면 해당 법 조항을 적용해 결론을 내리는 분쟁 해결의 과정이다. 재판 전담 기관은 대법원을 최고 심급으로 하는 각급 법원이다. 그런데 법 조항은 일정 부류의 행위나 사실에 일반적으로 적용될 것이 예정돼 있으므로 그 표현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재판은 ‘사실 확정→법 해석→법 적용’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고 ‘법 해석’은 재판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다.
재판소원 인정 땐 사법·3심제 질서 혼란
한정위헌 결정에 기속력을 부여하는 것은 구체적 사건에 적용할 ‘법 해석’을 헌재가 하고, 법원은 그 해석 지침에 따라 재판을 하라는 것이다. 이는 법원의 재판 기능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거니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 헌법 103조에도 위배된다. 헌재에 이런 권능을 주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과 삼권 분립 원리에도 배치된다.
1988년 현행 헌법에 따라 헌재가 출범할 당시 입법자들은 지금과 같은 혼란이 발생할 수 있음을 예견하고 법원과 헌재의 업무영역을 명확히 했던 것으로 보인다. 헌재법 68조는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고, 45조는 ‘법률 또는 법률 조항의 위헌 여부’만이 헌재 결정 대상임을 명시하고 있다. 법 규정상 한정위헌 결정이 불가능함은 명백한데도 헌재는 법적 근거 없이 독일의 실무례를 차용해 법원의 법 해석에 직접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왔다. 따라서 대법원이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구속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법 해석을 하는 것에 대해 대법원과 헌재의 권력 다툼으로 치부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헌재 의견서대로 한정위헌의 기속력과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하는 입법이 이뤄지면 심각한 사법 혼란과 심급 파괴가 우려된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뇌물죄의 주체인 공무원(형법 129조 1항)에 제주특별자치도 통합영향평가심의위원회 심의위원 중 위촉위원이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뇌물을 받은 공무원을 처벌하는 형법 조항은 위헌이 아니지만 위촉위원이 공무원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그 해석이 위헌이라는 것이다.
우선 1심에서 재판 중인 사건에서 관련 법 조항을 A견해에 따라 해석할 경우 원고가 승소하고, B견해로 해석하면 피고가 승소한다고 가정하자(예컨대 위 한정위헌 사건에서 위촉위원을 공무원에 포함시키는 견해와 포함시키지 않는 견해의 대립). 피고는 법원이 자신에게 불리한 A견해에 따라 해석할 것이 예상되면 ‘**법률 *항 *를 A견해에 따라 해석할 경우 헌법에 위반된다’는 취지로 한정위헌 결정을 구하는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다.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헌재법 68조 2항에 따라 직접 헌재에 A견해에 따라 해석하면 위헌이라는 취지로 한정위헌 결정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한다.
1심법원은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내릴 때까지 사건을 중단했다가 헌재 결정이 내려지면 그 취지에 따라 A견해를 취하지 않고, B견해에 따라 법률을 해석해 피고 승소 판결해야 한다. 이 경우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 때문에 원고가 항소·상고하더라도 상소심 법원도 헌재 해석에 따라 재판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사법부의 독립이나 법관의 독립은 형해화(形骸化)되는 것이다.
헌재 판결만 기다려…소송지연 사례 증가
둘째, 심급체계 파괴로 심급제도에 큰 혼란이 ㄷ생길 것이다. 1심 단계에서 위와 같은 일이 발생하면 재판은 사실상 헌재의 단심재판이 된다.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 취지에 따라 선고된 1심 재판에 대해 항소나 상고를 하더라도 다른 판단을 받을 수가 없어 무의미한 일이 되고 불필요한 소송비용만 낭비하게 된다.
셋째, 극심한 소송 지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헌법소원이 제기되면 재판부는 판결해 봤자 나중에 헌재 결정이 다른 취지로 내려지면 판결이 취소될 것이므로 결정 때까지 소송 절차를 중지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이에 따라 소송 절차는 한없이 지연될 수 있다. 소송 당사자가 한정위헌신청을 소송 지연 전략으로 쓸 수도 있다.
위의 사례는 다소 이례적이긴 하지만 당사자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재판 현실에 비춰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을 많이 내리지 않더라도 신청 폭주로 재판 형해화와 심급 혼란, 소송 지연 등은 발생할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 경제에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국가 공권력 모두가 헌법소원 대상인데도 법원의 재판만 제외된다면 평등원칙에 반하고, 재판에 의한 기본권 침해를 외면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헌법은 국회와 사법부 사이에 헌재를 위치시키고, 헌재에 위헌법률심사권을 부여함으로써 국회의 입법권 남용을 견제하는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회가 만든 악법이 직접 법원을 압박하지 못하도록 필터링 역할을 함으로써 사법부의 독립을 지원해야 할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직접 관여하겠다는 것은 헌재 스스로의 존재 의의를 약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윤남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읽을 만한 자료
▷‘재판소원의 도입 필요성과 인정범위에 관한 연구’, 고려법학 제60호, 2011년 3월
▷‘헌법소원의 대상에 법원의 재판을 포함시킬지에 관한 시론적 연구’, 공법연구 제30집 제5호, 2002년 6월
▷‘헌법재판제도의 이해’, 법원도서관, 2013년
▷‘대법원 판결과 동일한 취지의 해석을 전제로 한 한정위헌결정이 가능한지 여부’, 법률신문사, 2002년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와 한정위헌결정’, 법률신문사,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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