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력 태부족
원산지 전담자 없는 곳 수두룩…교육받아도 내용 잘 몰라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민관 합동 종합지원센터 활용…무역협회, 전방위 지원 나서
경기지역 자동차부품 1차 협력업체인 S사 박모 차장은 자신이 맡은 국내영업 업무는 뒤로 미룬 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원산지 사후 검증’ 대응 작업에 매달려 있다. 이 회사의 부품을 공급받는 업체에 미국 관세청이 FTA 사후 검증 사전 질의서를 보냈기 때문이다.
S사가 준비 중인 서류는 품목분류확인서 품목분류확인근거자료 원산지소명서 원산지확인서작성대장 수입신고필증 세금계산서 계약서 출납재고관리대장 등 50종에 이른다. 건별로 준비해야 하는 서류까지 포함하면 수백장이 넘는다는 게 박 차장의 하소연이다.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S사는 2차 협력업체 400여곳에서 납품받고 있다. 이들 협력업체에서도 관련 서류를 받아야 한다. 그는 “회사 일보다 2차 협력사들에 사후 검증 준비를 독려하고 자료를 작성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더 힘들다”고 말했다.
◆2차 협력업체 어려움 가중
2차 협력업체들은 종업원 수가 수십명에 불과한 중소기업이 많다. 10명 미만인 기업도 있다. 이들 회사의 사무직은 여직원 한두 명인 경우가 많다. 경리·회계·자금 업무부터 월급 지급, 장부 정리 등 10여가지 일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FTA 사후 검증 서류라는 생소한 일까지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T사의 K과장은 “75개에 이르는 2차 협력업체를 상대로 일곱 번이나 집중 교육을 했는데도 절반가량은 여전히 FTA 혜택을 받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FTA는 기술적인 내용이 많아 심지어 협력업체 사장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수십건씩 오는 이메일을 직접 보여주며 “내 일을 하기는커녕 협력업체가 보내온 FTA 관련 질문에 답하기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2·3차 협력업체들이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원산지 확인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발행하는 원산지확인서를 근거로 1차 협력업체는 자사 생산품이 ‘한국산’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서류를 수출업체에 발급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수출기업은 미국 수입기업에 ‘최종 수출제품에 대한 원산지확인서’를 떼 주게 된다.
◆복잡한 원산지 사후 검증
미국이 요구하는 FTA 원산지 사후 검증 서류는 수십종에 이른다. 한 업체가 사내용으로 작성한 ‘한·EU FTA에 따른 사후 검증 증빙 자료’에 따르면 국내영업팀은 품목분류근거자료 원산지확인서 관리매뉴얼 등 23종의 서류를 준비해야 하고, 구매팀은 계약서 원산지소명서 등 22종, 고객지원팀은 출납재고관리대장 등 2종,생산기술은 제조공정도 1종, 생산관리는 생산일시 등 2종을 작성해야 한다.
김기영 무역협회 FTA현장지원실 과장(관세사)은 “FTA 체결국별로 원산지 판정 기준이 다르고 한 국가에서도 품목에 따라 원산지 판정 기준이 다른 경우도 있다”며 “FTA지원실이나 관세사에게 적극적으로 문의해줄 것”을 요청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원산지확인서가 허위로 작성되면 이에 대한 책임은 협력업체 등 작성자가 져야 한다. 따라서 협력업체들은 FTA에서 규정한 원산지 사후 검증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전담자를 확보해야 한다. 무역협회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협력사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교육과 세미나 설명회 등을 통해 전폭 지원하고 있지만 관련기업이 워낙 많다보니 아직은 역부족인 상황이다.
해당 지역의 관세사나 FTA 전문가들이 업무를 대행해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경택 동양다이캐스팅 사장은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해 상공회의소나 무역협회 등 관련 기관에서 FTA 전문가를 보내줘 업무를 대행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2·3차 협력업체들이 FTA 원산지 사후 검증에 적극 동참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
FTA에 대한 대응을 비교적 잘하고 있다는 인천의 프레스업체 심팩의 임남일 해외영업부장은 “FTA 유관기관의 서비스는 원산지확인서를 발급해 주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교육시켜야 하며 특히 협력업체 들에게 적절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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