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브란덴부르크 문

입력 2013-06-20 17:16
수정 2013-06-20 23:17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철학자 칸트에게 핍박을 가했던 독일 군주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1744~1797)다. 그는 말년의 칸트에게 종교철학과 관련한 강연과 저술활동을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독일 프로이센 왕국의 역대 왕 중에서 가장 방탕하고 나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 군주는 칸트의 무신론적 철학사상을 무정부주의적이며 왕정을 위협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빌헬름 2세가 독일의 정신적 아이콘인 브란덴부르크 문을 세웠다는 건 역사적 아이러니다.

이 대형 상징물의 공사는 1788년부터 4년 동안 이뤄졌다. 궁전 건축가 카를 고타르트 랑그한스가 그리스 아폴로 신전으로 들어가는 문인 프로펠리아를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리스 양식으로 지었다. 모두 12개의 기둥을 두었다. 조각가 샤토가 만든 사두마차 상이 문 위에 조각돼 있다. 빌헬름 2세는 마차에 탑승한 여신으로 평화의 여신 아이레네를 조각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평화의 문으로 선포한 것이다.

정작 이 문을 통과한 인물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은 1806년 예나지역에서 프로이센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의 열병식을 이곳서 가졌다. 그는 사두마차를 분해해 파리로 가져가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이센은 1814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나폴레옹을 이기고 파리에서 마차를 찾아왔다. 이후 프로이센은 마차에 탄 여신을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로 바꿨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이때부터 승리의 문으로 여겨졌으며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 군대들이 개선할 때 반드시 통과하는 문으로 자리잡았다.

1871년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면서 독일 제국을 선포한 곳도 이 문앞이었다. 20세기 나치는 브란덴부르크 문을 아예 나치의 상징으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면서 브란덴부르크 문은 냉전과 분단의 상징으로 그려졌다가 1990년 독일 장벽이 무너지면서 다시 통일의 상징으로 변하기도 했다.

20세기 들어선 미 대통령이 세계에 메시지를 던지는 장소로도 활용된다. 50년 전 케네디 대통령은 이곳에서 유명한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는 내용으로 평화를 위한 세계 협력을 주문했으며 레이건 대통령도 이곳에서 당시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을 향해 동서냉전의 종식을 촉구하기도 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엊그제 브란덴부르크 문 광장 앞에서 “냉전시대는 끝났지만 빈곤 실업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핵감축 등 평화 노력을 제안했다. 시대에 따라 다른 상징으로 다가오는 브란덴부르크 문이다. 하지만 오바마의 브란덴부르크 문 연설은 어째 철 지난 연설 같은 느낌이 든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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