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유통 혁신 '30년 무풍지대'…가락시장 하역노조 개혁 가능할까

입력 2013-06-20 17:10
수정 2013-07-16 17:40
정부, 7월 공청회 개최

농산물 하역 노조가 독점…기계화땐 비용 85% 절감
하역서비스 법인화가 대안…4대보험 등 예산 확보 관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은 연간 5조원어치가 거래되는 국내 최대 농산물 도매시장이다. 농어민의 판매 금액 43%(도매시장 기준)를 담당하고 서울시민이 먹는 농산물 50%를 공급한다.

하지만 물류의 핵심인 ‘하역’ 시스템은 1985년 설립 당시의 ‘과거’에 머물러 있다. 산지에서 온 농산물을 트럭에서 내려(하차) 중도매인에게 운반하는 작업을 일일이 손으로 한다. 지게차가 있어도 이를 이용하는 경우는 3%에 불과하다. 가락시장이 유통 선진화의 ‘무풍지대’로 남은 원인은 무엇일까.

○하역노조가 하역업무 독점

가락시장에서 하역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은 1142명. 세 개 하역노조에 소속된 조합원들이다. 하역노조는 1970년대 용산 재래시장 등에서 하역 일을 맡다가 가락시장이 설립된 후 이곳 하역 사업권을 독점해 왔다. 과거 항운노조가 부산항 등 전국 항만에서 노무를 공급했던 것과 같은 형태다. 하역노조 역시 항운노조에 소속돼 있다.

노조지만 고용주가 없는 특수한 형태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이라면 노조로 인정받기 어렵겠지만 1970~1980년대엔 이런 형태로 설립신고가 많이 이뤄졌다”며 “정부가 정부 통제권에 노조를 두기 위해 사업권을 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도매시장법인이 농산물 출하자나 법인, 중도매인 등에서 낙찰금액의 최고 7%를 수수료로 받은 뒤 여기서 일정 부분을 하역비로 떼내 노조에 전달한다. 노조는 이를 정산해 출근 일수별로 노조원들에게 지급한다. 노조가 사실상 용역회사 기능을 하는 셈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농산물 유통구조 선진화를 위해 도매시장 기계화를 추진해 왔다. 규격화된 운반대인 ‘팰릿(pallet)’으로 농산물을 출하하면 지게차 등으로 빠르고 효율적으로 운반할 수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2008년 현장 조사한 결과 5t 트럭 한 대(10~12㎏ 규격품 기준)를 하역하는 데 기존 방식으로는 10만원, 기계 하역으로는 4만원이 들었다. 네 명이 2시간 동안 일할 분량을 지게차와 운전자 한 명이 12분 만에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도매시장 기계화를 50%까지 이루면 하역비 85%를 절감할 수 있다”며 “산지에서는 선별과 포장에 투자할 여력이 생기고 농산물 신선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원에겐 생계의 문제

하지만 하역노조 입장에서 기계화는 곧 인원 감축을 뜻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평균 연령 51세로 고령화가 심한 데다 대다수는 소득 차상위계층”이라며 “따라서 기계가 있어도 일부러 수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고용주가 없다 보니 도매시장법인이나 정부도 개입할 수 없다. 지난해 1월엔 비싼 하역비에 불만을 가진 일부 출하자들이 스스로 하역을 하려다 노조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노조의 하역 독점이 계속되는 한 물류 선진화는 먼 얘기라고 설명한다. 정부와 서울시는 개선 방향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네 차례 연구용역을 실시했지만 대안 마련에 실패했다. 노조 역시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조는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실제 고용주가 없다 보니 사회보험 가입이 불가능한 데다 퇴직금 등 복지제도도 허술하다.

정부는 국정과제인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하역 서비스를 용역회사 등 법인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떠오르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노조원의 사회보험 가입이 가능한 데다 소매점 운송 등 다른 고부가가치 사업도 가능해진다”며 “퇴직금과 전직 비용을 지원하는 등 인센티브가 같이 제공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다음달 공청회를 거쳐 오는 11월까지는 이 같은 내용의 물류선진화 방안을 내놓기로 했다. 하지만 노조 설득 문제, 법인화에 따른 예산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관건이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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