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세진 교수의 경제학 톡] (41) 기업지배구조와 주인-대리인 문제

입력 2013-06-19 16:57
수정 2013-06-20 04:55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 교수 sejinmin@dongguk.edu


대기업집단 규제에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이르기까지 ‘기업지배구조’란 용어가 종종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지배구조가 본격적인 관심사가 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부터다. 당시 인지도 높은 대기업집단들이 몰락하면서 후진적 기업지배구조가 원인 중 한 가지로 지목됐었다.

기업지배구조란 기업의 의사결정방식과 이해관계자들 간 권한과 책임이 분배되는 방식을 총칭한다. 즉 누가 어떻게 기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영상 사항들을 결정하는가에 대한 체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일상적 의사 결정은 법적 최고 책임자인 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진이 하고, 경영진은 이사회의 감독을 받는다. 우리나라 상법의 회사 관련 부분(회사편)에 따르면 기업의 중요한 재산상의 결정도 이사회 결의가 필요한데,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들은 주주총회에서 선임되므로 결국 기업의 목표는 주주의 이익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는 기업의 목표를 이윤극대화로 가정하는데, 이는 기업의 목표에 대한 법적 해석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기업지배구조 문제의 본질은 주주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경영진에게 맡긴다는 데에 있다. 경영진은 주주들을 위해 고용됐지만 각자 자기만의 이해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주주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렇게 경제행위를 위임하는 쪽이 위임받은 쪽의 행동을 일일이 감시할 수 없어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라고 한다.

영국이나 미국처럼 뚜렷한 주인이 없는 기업들이 보편적인 곳에서는 경영진을 효과적으로 감독할 방안들이 오래전부터 고민됐다. 따라서 이른바 영·미식 기업지배구조에서는 분산된 주주들이 최고경영자의 독단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이사회가 강조됐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엔론의 회계부정 스캔들처럼 이따금 문제가 크게 불거져 이사회의 기능과 분산된 소유구조에 대한 회의 및 비판이 반복됐다.

우리나라는 이와 달리 대기업집단의 지배주주가 경영진과 결합돼 있는 것이 문제로 지적돼왔다. 이들의 결합을 견제할 기구가 유명무실했기 때문에 외환위기 때 대형 기업들이 몰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당연히 획기적인 제도개선이 있었다. 상법 회사편은 1962년 제정된 이후 외환위기 전까지 35년 동안 네 번 개정된 데 반해 외환위기 이후 불과 10년 동안 다섯 번이나 개정된 것이다.

그러나 주로 영·미식의 기업지배구조를 본받다보니 제도가 여전히 몸에 맞지 않는 옷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영·미와 달리 지배주주가 확실해 경영진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순기능은 살리되, 지배주주가 다른 주주들의 이해를 해칠 가능성을 차단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만족스러운 묘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길어지는 경기침체가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인가, 저성장의 늪이 될 것인가의 기로에 있는 지금 적절한 제도가 고안되기를 바란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 교수 sejinmin@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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