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강한 수출中企] 명정보기술, 45일 바다에 잠긴 천안함 CCTV 영상 복구…매년 2만여건 되살려

입력 2013-06-19 15:30
데이터 복구 '국내 1위'…20여년간 35만건 처리
美 시게이트사와 업무협약…세계적으로 능력 인정 받아…中·동남아 등에 기술 수출



2010년 3월 북한의 천안함 폭침으로 해군 장병 40명이 목숨을 잃고 6명이 실종당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후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자작극이다” “훈련 중 실수로 인한 침몰이다”라는 주장까지 흘러나왔다.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것이 명정보기술이다. 당시 국방부 합동조사반은 침몰 원인을 둘러싼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워지자 국내 데이터 복구 1위 기업인 명정보기술에 천안함 내부 CCTV 영상이 있는 컴퓨터 데이터를 복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명정보기술에 넘겨진 것은 45일 동안 바다 속에 잠겨 소금물과 뻘이 엉켜 있는 컴퓨터였다. 흙을 털어내고 하드디스크드라이브를 분리했지만 알루미늄 원판이 하얗게 부식된 상태였다.

이명재 사장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국가 재난의 진상을 꼭 밝혀내야 한다는 사명감과 오기로 밀어붙였다”고 회상했다. 이 사장은 중견 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열흘간 밤샘 작업에 매달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침몰 이전 사병들이 교대 근무하는 모습, 체육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복원했다. 그 영상을 통해 자작극 논란이 잦아들었고 천안함 폭발 시점이 밝혀졌다.

명정보기술은 국내 데이터복구 시장을 개척해 온 전문업체다. 1993년 이 사업에 뛰어들어 20년 동안 매년 2만여건, 총 35만여건의 데이터를 복구했다.

데이터복구 하면 보통 PC를 생각하지만 이 회사는 하드디스크와 휴대폰, CCTV, 메모리 등 모든 종류의 저장장치를 취급한다.

이 사장는 “하루 100건 이상, 1년에 2만건 이상의 데이터 복구 의뢰를 받는다”며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기업과 개인, 공공기관의 하소연을 듣고 이를 복구시켜 돌려줬을 때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해외 기술수출 선두

명정보기술은 지난해 12월 세계 최대 저장장치 제조회사인 시게이트와 하드디스크드라이브 데이터복구 업무 전체를 맡는 계약을 체결했다. “명정보기술의 기술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이 사장는 평가했다. 천안함 데이터 복구 후 생긴 경사였다.

명정보기술은 국내외에서 데이터복구에 관한 한 기술력과 이에 따른 실적을 자랑하고 있다. 2010년 링스헬기 추락사고 원인을 파헤친 후 국가정보원과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등과 정보기관 인증 및 협력계약을 체결했다.

또 말레이시아 정부에 45만달러를 받고 데이터 복구 기술을 이전했을 뿐 아니라 일본 중국 인도 태국 이란 나이지리아 브라질 멕시코 등의 민간업체들과도 데이터복구 부문에서 기술 협력을 하고 있다. 명정보기술은 2008년 중국 쑤저우에 지점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 사장는 지난해 12월 한국무역협회·지식경제부·한국경제신문이 공동 선정한 ‘2012년 한국을 빛낸 올해의 무역인상’을 받았다. 이 상은 매달 2명씩 선정하는 ‘이달의 무역인’ 가운데 수출 기여도가 가장 큰 기업인에게 주어진다. 이 사장는 한국의 정보 보호와 보안 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기술 강소기업’의 면모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SSD 첫 개발 판매

명정보기술은 데이터복구뿐만 아니라 △액정표시장치(LCD)와 노트북 수리 △산업용 컴퓨터 수리 및 제작 △저장장치 관련 온라인 쇼핑몰 △산업용 계측기, 유지보수용 전자부품 등의 수출입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제조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LCD사업은 LCD패널이나 회로가 손상되면 이를 고쳐 재생산하는 것으로, 최첨단 수리 설비와 클린룸을 두고 삼성과 LG 등 국내 대기업 제품을 수리하고 교체해주고 있다.

명정보기술은 2004년 국내 최초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SSD는 기존 하드디스크와 달리 물리적 구동부 없이 플래시 메모리 등에 데이터를 고속으로 기록·저장할 수 있는 장치다. 주로 산업용으로 사용된다.


◆고졸 CEO…"충북 오창단지 '한국의 실리콘밸리' 만드는 게 꿈"

이명재 명정보기술 대표는 고졸 출신 최고경영자(CEO·사진)다. 1957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난 그는 1976년 구미에 있는 국립 금오공고를 1회로 졸업했다. 육군 방공포병대에서 정비관으로 복무한 뒤 1982년 다국적 회사인 AMK(Applied Magnetics Korea)에 입사했다.

AMK는 미국계 회사로 당시 하드디스크 헤드 제조 분야에서 세계 1위 업체였다. 그는 생산직으로 입사해 기름때를 먹으며 기술을 익혔다.

당시 일화. 신입직원 이명재는 출근 시간(오전 9시)보다 매일 2시간 먼저 나왔다. 하드디스크드라이브에 대한 미국 원서를 찾아 일일이 베껴쓰며 공부했다. 신기술을 배운다며 미국까지 건너가 관련 업체를 찾기도 했다. 이 대표는 “외국인이 불쑥 찾아와 기술을 배우겠다고 하니 거절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경영진은 맹렬히 공부하는 그를 눈여겨 봤다. 입사 3년 만에 엔지니어로 발탁됐고 매년 승진을 거듭했다. 하드디스크드라이브 수리 총괄업무도 맡게 됐다.

창업의 계기는 AMK 철수였다. 1990년 AMK는 한국 내 인건비 상승 등을 이유로 생산공장을 말레이시아로 이전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디지털’이란 용어조차 생소했다. 이 대표는 “컴퓨터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했다”며 “그동안 쌓은 기술과 영업망, 고객을 기반으로 창업하기로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처음엔 하드디스크드라이브 수리 사업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컴퓨터 속 자료를 복원해 달라는 요청이 점차 늘어났다. “중요한 정보가 저장돼 있으니 이를 되살려 주기만 한다면 비용은 얼마든지 주겠다는 주문이 계속 들어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데이터 복구 시장의 잠재력을 보고 1993년 데이터 복구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데이터복구 사업은 명정보기술이 아시아 최초였다는 게 이 대표의 얘기다.

그 후 20년. 명정보기술은 그동안 30만건 이상의 데이터를 복구했다. 창업 당시 3명이었던 직원은 280명으로 늘었다. 이 대표는 회사 비전에 대해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 서비스 회사’라고 못박았다. 명정보기술은 현재 국내 데이터복구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명정보기술은 앞으로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현재 미국과 일본에 지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중국 쑤저우에도 지점을 세우고 현지 공장을 추가 증설하고 있다.

기술 개발 투자도 더 늘릴 예정이다. 지난해 매출은 400억원. 이 대표는 “2~3년 후에는 1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고향이자 본사가 있는 충북지역 발전을 위해서도 적극 나서고 있다. 2003년 충북 오창과학산업단지로 본사를 옮긴 뒤 단지 운영을 담당하는 관리공단 이사장을 맡아 단지가 빠르게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창단지를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



☞데이터 복원


물리적인 증상이나 소프트웨어적인 문제로 인해 컴퓨터 저장장치의 데이터가 손상됐을 때 이를 원래대로 복구해주는 작업이다.

데이터를 삭제해도 저장장치가 심하게 손상되지 않는 한 작업한 데이터는 매체에 그대로 남는다. 그러나 장치가 심하게 훼손됐거나 덮어쓰기 등으로 원본 데이터가 상실된 경우에는 복구 가능성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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