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수요 예측 틀리고도 4년째 절전대책만 외쳐
10년 걸리는 原電 건설은 시민단체·정치권 '눈치만'
“장관님이 직접 오시는 만큼 ‘선물’ 차원에서 성의를 보여 달라고 하더군요.”
얼마 전 전력 피크타임대 조업시간 단축 목표를 놓고 산업통상자원부와 실랑이를 벌인 한 대형 제조업체 A사의 한 임원이 전해준 이야기다. 나중에 다른 일정으로 취소되긴 했지만 당시 윤상직 장관 방문을 앞두고 공장 가동 중단 기간을 조금 더 늘려 달라는 게 산업부 실무자의 주문이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전력대란 시대의 한 단면이다. 정부가 공공시설과 주요 기업체, 상업용 빌딩을 상대로 고강도 절전 대책을 펼치고 있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상태를 감내해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설명은 없다. 불량 부품 문제로 원자력발전소 몇 기가 멈춘 탓만도 아니다. 절전 대책은 올해로 벌써 4년째다.
산업부의 전신인 지식경제부 시절 최경환(2009년 9월19일~2011년 1월27일), 최중경(2011년 1월27일~2011년 11월16일), 홍석우(2011년 11월17일~2013년 3월11일) 장관은 해다마 절전 참여를 호소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에어컨을 켜지 않은 채 부채로 땀을 식히는 장관들의 회의 모습이 판박이처럼 재현됐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전력수요 예측이 틀렸기 때문이다. 2년마다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발표하는 산업부는 지난 2월 6차 계획(2013~2027년) 발표를 통해 이를 뒤늦게 인정했다. “2010년 이후 예측 수요보다 실수요 전력이 500만㎾ 이상 웃돌면서 수급이 불안해졌다”는 것이다. 원전 1기의 발전용량이 100만㎾라는 점을 감안하면 5기의 원전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전력 경보가 총 75회나 울렸던 지난해에는 무려 717만㎾나 차이가 났다.
문제는 시간이다. 통상 원자력발전소 건설 기간은 10년, 화력발전소는 7년이다. 그런데도 산업부는 정치권 등의 눈치를 살피느라 원전 추가 건설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밀양 송전탑 건설과 같은 첨예한 현안은 선·후임 장관들의 무책임한 떠넘기기 끝에 정치권의 개입을 불렀다.
윤원철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근본적 전력수급 대책 마련과 함께 에너지 백년대계를 짜지 않으면 한국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대정전 폭탄(블랙아웃)’을 안고 가는 것과 다름없다”고 경고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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