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세계적 컨설턴트가 중국 '야동' 암시장에 간 이유

입력 2013-06-06 18:22
수정 2013-06-07 04:18
<관찰의 힘>
얀 칩체이스,사이먼 슈타인하트 지음 야나 마키에이라 옮김 위너스북 304쪽 만5000원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이자 이노베이션 컨설팅 회사인 ‘프로그’의 최고책임연구원인 얀 칩체이스가 하는 일은 전 세계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것이다. 미국 유타주에서 일요 예배에 참석하거나 일본 도쿄 대규모 건축자재 마트의 통로를 누비거나, 꼭두새벽에 주택가로 가서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부산히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어떤 것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관찰하기 위해 좀 더 위험한 일도 서슴지 않는다. 중국 청두의 ‘19금’ 동영상 암거래 시장을 기웃거리거나 말레이시아에서 고리대금 업자에게 돈을 빌리기도 하고,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혼잡한 출퇴근길을 오토바이로 달린다.

그가 이처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해독·분석하는 일에 세계 유수 대기업들은 아낌없이 거금을 낸다. 관찰의 결과물에서 ‘아직 개척하지 않은 세계 시장의 문을 열어젖힐 도화선’을 발견하거나 뚜렷한 경쟁우위를 확보할 만한 기회를 감지해낼 수 있어서다.

칩체이스는《관찰의 힘》에서 ‘드러나 있으나 보이지 않는(hidden in plain sight)’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을 꿰뚫어볼 수 있는 다양한 관찰의 방법론과 분석의 틀을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사례를 곁들여 소개한다.

저자는 새로운 시장을 제대로 찾아내고 그 속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요인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거기에서 비롯된 통찰력으로 향후 각광받을 제품과 서비스가 무엇인지 파악하거나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하는 모든 일과 그들의 포부 및 희망, 두려움 등을 관찰하고 다층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저자는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경계를 가르는 ‘마음의 선’을 탐구하는 것에서 출발해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가 수용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우리가 소지하는 물건들이 언제, 어떻게, 왜 수중에 들어왔는지, 타인 앞에서 어떤 식으로 과시되며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표현하는지도 살펴본다.

‘도시와 함께 깨어나기’ ‘현지 통근길을 함께 다니기’ ‘표지판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이발소에서 수다 떨기’ 등 저자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관찰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그곳의 문화와 삶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방법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한다. 기업과 소비자가 상호 간의 신뢰를 어떤 식으로 표출하고, ‘신뢰 생태계’가 제품과 서비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도 상술한다.

저자가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해독하는 데 즐겨 사용하는 이론과 관점, 방법론 등을 소개하면서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혁신의 발화점은 주변의 평범한 것에 있다’는 점이다. 그는 “가장 획기적이고 필요로 하는 혁신은 우리 주변에서 나온다”며 “이를 위해 관찰하고 기록하고 직접 설문하라”고 조언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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