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 시인, 60년만에 17번째 시집
"지금 세상은 결핍을 모르는 비인간적인 사회"
"첫 시집 '목숨'은 생존 자체의 문제…이번 '심장이 아프다'는 情 이야기"
박근혜 대통령의 '가톨릭 代母'
“노인들도 암에 걸리면 수술대에 오르고, 더 살려고 하죠. 집착이나 공포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보다 삶에 ‘정’이 들어서라고 봐요. 수십년 간직해 온 꽃병은 귀퉁이가 좀 깨져도 버리지 않잖아요. 85년 인생을 돌아보니 아프고 깨져도 귀한 게 삶인 것 같습니다.”
원로 시인 김남조 씨(사진)가 17번 째 시집 《심장이 아프다》(문학수첩)를 최근 발표했다. 1953년 6·25전쟁 직후 발표한 첫 시집 《목숨》을 낸 지 꼭 60년 만이다. ‘목숨’에서 시작해 60년을 거쳐 비슷한 이미지인 ‘심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목숨과 심장의 의미를 “같으면서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첫 시집에서 말한 목숨은 생존 자체였어요. 그 무렵 극장에 갔는데 팔다리가 없는 상이용사를 전우가 업고 들어오더군요. 하찮고 비천하더라도 숨 쉬는 것, 돌멩이처럼 굴러도 죽지 않으려는 본능을 썼어요. 지금은 생명의 경건함을 보는 거죠. 만년에 와서야 세상을 아름답게 봅니다. 명이 짧았으면 몰랐을 테니 감사한 일이죠.”
그의 ‘긍정’은 이번 시집에서 현실 세계로 확장된다. 식민지의 소녀로 자란 그가 지금은 조국에서 안식을 얻으며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느끼는 감사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룬 공동체에 대한 그의 감정이 시 ‘일용할 행복’에 잘 드러나 있다.
‘조간신문과 커피 한 잔/TV화면엔 수려강산, 정겨운 사람들/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고./이쯤으로도 눈물겹습니다/식민지의 아이, 노인 되어/일용할 오늘의 행복/고맙게 받고 있습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가톨릭 대모(代母·영세나 견진성사를 받을 때 세우는 신앙의 후견인)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이 성심여고 2학년 때 영세를 받으면서 육영수 여사로부터 “대모를 해줄 수 있겠느냐”는 연락받은 게 인연이 됐다.
“육영수 여사와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대담했던 적이 있어 알게 됐죠. 그 후 서강대에 진학한 박 대통령이 맞지 않는 전공(전자공학) 때문에 고민한다기에 한 번 상담을 했어요. 그때 ‘그래도 전공을 마저 공부하고 학사편입으로 다른 전공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조언했습니다. 참 단아한 학생이었어요. 나라를 위해 잘해주길 바랍니다.”
그는 이번 시집에 호암 이병철에 관한 시 ‘번영의 명인으로’를 수록했다. 호암의 자서전을 읽다가 지금의 한국을 만드는 데 일조한 부분이 크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기업인들이 현대사에 기여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정주영 회장이 고무신이 닳을까 봐 벗어들고 걷다 다른 사람이 다가오면 잠시 다시 신었다는 일화를 들었어요. 요즘 어린이들은 분실물을 찾아가지도 않는다던데, 결핍을 모르는 게 오히려 비인간적인 사회를 부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결핍과 고통이 있어 삶이 아름다운 건데 말이죠.”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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