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오직 가격과 품질로만 경쟁토록 해야

입력 2013-06-03 17:21
수정 2013-06-03 20:58
자유 시장이 곧 공정경쟁 기반
정상적 경제력 집중 적대시하면 기업 도전정신까지 후퇴시킬 것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shoonlee@snu.ac.kr>


경제성장 속도가 빨랐던 만큼 현 한국 사회에는 전근대적 요소와 첨단 시대적 특징이 공존한다. 언론자유의 핵심인 책임의식은 동네 사랑방 수준이면서도 전 세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문화를 이끄는 선두그룹에 속한다. 과거의 전통 색채가 어렵게 이룩한 선진화 부문과 도처에서 뒤섞여 있다.

보존해야 할 전통요소와 새로 습득한 선진요인이 서로 보완하면서 조화를 이룬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불행히도 지금은 과거의 잔재와 불완전한 미래가 곳곳에서 갈등을 빚는다. 적대적 모순관계가 낙후요인을 걸러내고 불량 신문물을 정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거꾸로 완고한 수구에 발목 잡히거나 분별없는 현대화 속에 표류하는 재난을 부를 수도 있다.

공정거래법이 좋은 예다. 초기에는 독점금지법 등으로 불렸지만 최근의 국제표준은 경쟁법으로서 시장경쟁의 공정성 창달을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과거 경쟁법체계는 독과점을 물가불안의 원인으로 파악했고 현행법은 재벌 문제를 공정경쟁 훼손의 문제로 파악한다. 공정경쟁에 대한 이해가 후진적인 경쟁법으로는 공정경쟁 창달을 이루기 어렵다.

현행법의 제1조는 창의적 기업활동, 소비자 보호,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의 산물이고 이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으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 집중의 방지, 부당 공동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의 규제를 적시한다. 여기에서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방지해야 공정경쟁이 보장된다는 인식이 문제다. 최근의 경제민주화 조류가 이 인식에 가세하고 있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

부자와 빈자 사이의 경쟁은 출발선 자체가 다르므로 두말할 것도 없이 부자가 유리하다. 이처럼 처음부터 유불리가 완연한 경쟁은 결코 공정하지 못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같은 기준으로 보면 머리 좋은 아이와 머리 나쁜 아이 간의 학업경쟁도 공정한 것이 아니다.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려면 유리한 사람에게 핸디캡을 주고 불리한 사람을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한다면 경쟁 자체가 불필요하다.

시장경제에서 개인은 스스로 필요한 물자를 직접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물자의 생산에 종사하고, 그렇게 얻은 소득으로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상품을 구입해 생활한다. 좋은 값에 많이 팔리는 상품의 생산에 종사하면 높은 소득을 누리지만 별로 찾지 않는 상품을 생산하면 그 직업은 소득이 낮다. 사람들이 기꺼이 비싼 값을 지불하고도 사는 상품을 찾아서 생산해야 소득이 높은 것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개인이 자원과 노력을 사회적 필요에 맞게 투입하는 까닭은 그렇게 해야 자신의 몫이 커지기 때문이다.

누구나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좋아하므로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더 값싸고 더 질 좋은 상품을 생산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사회의 자원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용도에 효율적으로 배분된다. 그런데 더 좋은 상품을 더 싸게 생산해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없다면 시장경쟁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효율적 자원배분도 보장되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은 더 좋은 상품을 더 싸게 생산하는 사람이 돈을 벌지 못하도록 배제하는 경쟁은 공정하지 않다고 규정한다. 결국 가격과 품질만으로 승패를 가르는 경쟁만이 공정한 경쟁이다.

경쟁이 이런 의미로 공정할 때 그 승자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좋은 상품을 싸게 공급하면서 높은 소득을 누리게 된다. 즉 공정경쟁의 결과는 얼마든지 경제력 집중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경쟁의 승자가 높은 소득을 얻지 못하게 규제한다면 싸고 좋은 상품을 생산하는 사업자를 배제하는 불공정경쟁이 된다. 공정경쟁의 결과로 생긴 경제력 집중을, 탈법적 소득이 빚어낸 경제력 집중과 혼동해 적대시하면 문제는 커진다.

공정경쟁을 위해 출발선이 반드시 같아야 한다면 양질의 상품을 더 싸게 만들어내는 사업자에게 오히려 불이익을 줘야 하는 비정상적인 결과를 초래할 게 뻔하다. 현행 공정거래법이 갖고 있는 공정경쟁에 대한 이런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경제민주화가 오히려 공정경쟁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shoonle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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