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값 폭락에 마이너스 속출
월지급식 90%가 해외채권형
원금 까먹어…은퇴자 발동동
"적절한 환매 타이밍 잡고 조정 거친 뒤 재투자 해볼 만"
작년 말 공기업에서 퇴직한 윤모씨(58)는 며칠 전 증권사에서 보내온 펀드 수익률 보고서를 뜯어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중위험·중수익 상품이란 설명을 듣고 해외채권형 펀드에 가입했는데 지난 1개월간 수익률이 -1.58%로 나와 있어서다. 윤씨는 “정기예금보다 수익이 조금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마이너스가 났다”며 “노후 자금이어서 남들보다 더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지난 1~2년간 수익률 고공행진을 해온 해외채권형 펀드가 줄줄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의 채권 금리가 급등(채권값 급락)한 탓이다. 더구나 고령자들이 많이 가입한 월지급식 펀드의 90% 이상이 해외 채권에 투자하고 있어 은퇴자들의 자금 운용에도 비상이 걸렸다.
◆채권형 펀드만 마이너스 ‘비상’
3일 펀드 평가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해외채권형 펀드의 지난 1개월간 평균 수익률은 -0.82%로 집계됐다. 전체 유형별 펀드 중에서 최악의 성적표다. 같은 기간 국내주식형 펀드는 평균 2.63%, 해외주식형 펀드는 2.04%를 기록했다.
해외채권형 펀드의 지난 1주일간 수익률 역시 평균 -0.96%로, 전체 유형 중에서 가장 저조하다. 해외채권형 펀드는 국내에서 9조141억원어치가 불입됐으며, 현재 펀드 수는 123종이다.
신동준 동부증권 투자전략본부장은 “내년 초 이후 글로벌 금리가 본격 상승세로 접어들면 신흥국 채권과 하이일드 채권 가격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해외 채권 가격이 낮아지면 해외채권형 펀드의 수익률도 동반 하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강성부 신한금융투자 채권분석팀장은 “최소한 연말까지는 채권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은퇴자 월급’ 까먹는 월지급식
퇴직자들이 많이 가입한 월지급식 펀드에서도 원금 손실이 속출하고 있다. 월지급식 펀드는 목돈을 투자상품에 넣은 뒤 수익에 따라 가입자에게 매달 생활비를 지급(정기 환매)하는 방식인데, 수익률이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원금에 손을 댈 수밖에 없어서다.
예를 들어 가입자가 퇴직금 1억원을 월지급식 펀드에 넣고 나서 매달 은행 이자보다 많은 50만원씩 타는 계약을 맺었다고 가정하자. 안정적인 수익이 나올 때는 문제가 없지만 외부 환경 변화로 수익률이 급락했다면 원금에서 생활비를 대신 지급한다. 일부 가입자들은 펀드 적립금이 바닥날 때까지 이런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는 게 금융계의 얘기다.
특히 월지급식 펀드의 대부분이 해외 채권에 투자하는 형태여서 수익률이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설정액이 8131억원에 달하는 대형 펀드 ‘AB월지급글로벌고수익펀드A’의 지난 1개월간 수익률은 -0.02%였다. 글로벌 하이일드채권에 주로 투자하는 이 펀드는 작년만 해도 연 15~16%의 고수익을 내던 상품이었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자신이 가입한 월지급식 펀드의 수익률과 잔액을 확인하고, 펀드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금리 오르면 손실 위험” 알아야
투자자 중 상당수가 위험이 낮다는 이유로 채권형 펀드를 선택하지만 금리 상승기엔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황재훈 동양증권 금융상품전략팀 차장은 “은행의 확정금리형 예·적금보다 변동성이 조금 더 높지만 시장금리에 만족하지 못하는 중위험·중수익 투자자에게 채권형 펀드를 많이 권해왔다”며 “다만 해외 채권시장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어 어느 정도 기대수익을 실현했다면 적절한 환매 타이밍을 잡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일각에선 해외 채권값이 일시적으로 급락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수익률을 회복할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기본적으로 투자 대상인 채권이 만기 때 원금을 돌려줄 뿐만 아니라 일정 시기마다 이표이자(채권 발행 때 약속한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신흥국 채권이나 선진국 투기등급 채권의 금리가 국내 국고채나 회사채보다 높아 단순 이표이자만으로도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배성진 현대증권 연구위원은 “금리 상승 기조가 언제까지든 계속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 조정을 받은 다음 투자하면 고수익도 노려볼 수 있다”고 했다.
조재길/조귀동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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