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Story - 정권 초 무차별 사정에 떨고있는 대기업들
세수확보·비리 척결 등 사정기관 존재감 과시인 듯
6월 임시국회선 쓰나미급 입법 폭주 예고
대관팀, 관련 정보 파악위해 "여의도 합숙해야 할 판"
“얼마 전까지 임원회의 분위기가 ‘정부 방향이 정해질 때까지 좀 기다리자’였다면 최근 사정 폭풍을 보고선 ‘(투자든 고용이든) 빨리 뭐라도 하자’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A기업 관계자)
“청와대가 나서 조직적으로 하는 것 같지는 않고, 검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정권 초 사정강도를 높이는 것 같다.” (B기업 관계자)
대관업무를 맡고 있는 A기업 김 상무는 최근 열흘간 거의 매일 밤을 새웠다. 검찰이 지난 21일 CJ그룹과 이재현 회장 일가에 대해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전격 조사에 나선 게 시발탄이었다. 직후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조세회피지역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사람 명단을 발표하자 국세청과 관세청은 앞다퉈 효성 OCI 등 역외탈세혐의가 나타난 기업들을 상대로 조사에 착수했다. 금융감독원과 공정위 등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곧바로 조사에 뛰어들었다.
이럴 때마다 정보를 수집하고 문제를 분석해 보고서를 올리는 게 김 상무의 임무다. 그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매일 국회 검찰 국세청 등 곳곳으로 흩어져, 정보 수집을 하느라 지쳐 있다. 김 상무의 사무실에선 최근 더 시끄러워진 회사 앞 시위대의 확성기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대기업들이 ‘패닉’에 빠졌다. 지난 4월 국회의 경제민주화 법안에 대응하느라 바빴던 기업들은 5월 거센 사정 폭풍이 몰아치자 ‘혹시’란 불안감 속에 안팎을 집중 단속하고 있다. “털어서 아무 것도 안 나올 거라고 확신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그래서 바짝 몸을 낮추고 있다”는 게 김 상무의 말이다.
세무조사는 예상했던 일이다. 김 상무는 “정부가 추경을 편성하며 올해 세수부족분을 6조원으로 추산하자 국세청과 관세청이 뛰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일부 기업들은 “억울하지만 반발해봤자 득될 게 뭐 있겠냐”며 자포자기하는 분위기다. 최근 국세청 조사요원이 들이닥친 B기업에선 직원들끼리 실랑이가 벌어졌다. 법무실 소속 변호사들이 “영장을 보여줘야 자료를 내놓을 수 있다”고 주장하자 대관 담당자들이 “조사에 순순히 협조하라”고 나선 것이다.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C기업도 마찬가지다. C사 비서실 관계자는 “회장께 조사 사실을 보고했더니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CJ그룹 다음 타깃이 어디인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김 상무는 “CJ가 지난 정권 때 특혜를 본 기업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기업들이 서로 ‘우리는 지난 정권 때 득본 게 없다’고 발을 뺀다”고 말했다. CJ가 내수기업이란 점에서 글로벌화된 기업들은 ‘설마 우리는 아니겠지’ 하는 분위기다. 과거 비자금 수사를 한 차례 받았거나, 작년에 국세청 세무조사로 많은 돈을 냈던 대기업도 “설마 올해는 아니겠지”라며 스스로 위안하고 있다.
사정 당국의 수사는 사업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비자금, 탈세 등으로 조사받고 있다는 게 알려지는 순간 이미지는 땅바닥에 떨어진다. 내부 직원들도 동요한다. 해외 매출이 많은 기업은 해외 고객들이 불안해할 수 있다. E기업 기획담당 부사장은 “올해 글로벌 경기 회복이 요원해 매출 증가는 어렵다. 엔저 등으로 경쟁이 심해져 영업이익률도 줄어든 판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기업들은 여러모로 살 길을 찾고 있다. 창조경제 기여 방안이나 내부일감 개방, 투자 확대 등을 줄줄이 발표하는 이유다. 또 국회의원 보좌관 등을 영입해 대관업무에 배치하는 곳도 많다. E기업은 대관업무를 하던 인력 3명을 지주사 사회공헌(CSR) 팀에 배속시켰다.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에 협조하고 이를 계열사에 효율적으로 전파하기 위해서다.
이달엔 더 큰 ‘쓰나미’가 몰려온다. 오는 3일 개원하는 임시국회에선 일감몰아주기 규제법, 공정거래법, 금산분리법, 통상임금법 등 재계에 수십조원의 피해를 입힐 수 있거나 일부 대기업의 지배구조까지 뒤흔들 수 있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상정된다. 김 상무는 “6월엔 전 직원이 방을 잡고 아예 여의도에서 생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6월 임시국회는 3일부터 7월2일까지 30일 동안 열린다.
김현석/박해영/정인설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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