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세사 세계1위' 웰크론그룹, 섬유사가 플랜트업체 인수 "연관 없다고요?"

입력 2013-05-28 17:24
수정 2013-05-28 23:57
주목! 이 기업 - 위기 때 과감한 M&A로 성공가도…'극세사 세계1위' 웰크론그룹

흡수력 뛰어난 극세사로 만든 생리대 경쟁력 우수…담수·유화플랜트도 진출
3년만에 그룹매출 2.5배…영업이익도 2배 늘어


2010년 섬유업체 웰크론그룹의 이영규 회장(54·사진)은 고민에 빠졌다. 이 회장은 사업 확장을 위해 한텍엔지니어링(해수담수플랜트 업체), 강원비앤이(석유화학플랜드 업체) 인수를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2007년 생리대 등 여성위생용품을 만드는 예지미인을 사들인 데 이어 또다시 인수합병(M&A)에 나서는 것에 대한 반감이었다. 문어발식 확장이란 우려가 나오고 기업사냥꾼처럼 행동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 회장은 그해 2월 한텍엔지니어링을, 12월 강원비앤비를 차례로 인수했다.

○모회사 영업망 적극 활용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웰크론한텍(옛 한텍엔지니어링)의 지난해 매출은 707억원. 인수 전(2009년 303억원)에 비해 3년 만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웰크론강원(구 강원비앤이)도 그 사이 매출이 177%(386억원→1065억원) 증가했다. 인수한 두 자회사 매출이 모 회사인 웰크론(612억원)을 제친 것이다. 웰크론헬스케어(구 예지미인)도 지난해 197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인수 후 처음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 회장은 인수 회사들이 모 회사의 영업망을 활용하게 해 수출을 늘리는 식으로 시너지 효과를 추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웰크론그룹 매출은 2009년보다 2.5배 증가한 2581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두 배 가까이(105억원→191억원)로 늘어났다. 이 회장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잘하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먹거리를 끊임없이 찾아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이 경제가 어려울 때 기업을 인수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연관 종에 집중했기 때문. 그는 한양대 섬유공학과를 졸업, 1992년 웰크론의 전신인 은성코퍼레이션을 설립했다. 그는 일부 의류에만 쓰이던 극세사를 걸레나 안경닦이 등 생활용품으로 개발했다. 또 방탄용 섬유, 나노섬유 등 산업용 섬유 부문에 극세사를 접목했다.

그는 극세사 사업 강화를 위해 2011년 침구 브랜드 ‘세사리빙’을 만들고 대리점 170곳을 열었다. 세계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세계 산업용 극세사 시장에서 웰크론은 20%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 회장은 섬유사업에 그치지 않고 연관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는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있고 자체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만을 사들인다”고 말했다. 예지미인의 경우 생리대에 들어가는 흡수력이 뛰어난 극세사 소재를 개발한 것을 계기로 인수를 결심했다.

또 극세사를 이용해 수처리용 필터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해수담수설비에 관심을 갖고 한텍엔지니어링을 사들였다. 강원비앤이는 석유화학플랜트뿐만 아니라 보일러 등을 생산하는 것이 인수의 주요 배경이었다. 이 회장은 “한텍엔지니어링은 스팀을 활용해 수처리를 하고 있는데 강원비앤비는 여기에 들어가는 스팀 보일러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두 자회사 간 인적자원과 기술력을 공유할 수 있고 공동수주가 가능해 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보기술(IT)업체 인수 제의를 받았지만 기존 사업과 동떨어졌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연관기업만 인수

위기 때마다 투자를 더욱 늘린 것도 성공 비법 중 하나다. 이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경기 부천시에 공장을 지었다. 임대 공장이 아닌 자체 공장을 세우고 생산을 시작한 것. 그는 “임대 공장에선 제품 개발을 하기 힘들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불황이지만 자체 공장을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의외의 효과를 가져왔다.

위기일 때 공장을 지었다는 사실이 해외 바이어들에게 회사가 건실하고 납품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준 것. 이 때문에 1998년도 매출은 전년 대비 세 배 이상 늘어나 89억원을 기록했다. 이뿐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그는 충북 음성에 공장을 짓고 사업을 확장했다. 그는 “위기가 올수록 위축되지 말고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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