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의회 권력] 美·英, 의원입법 깐깐하게 '규제 평가'

입력 2013-05-28 17:11
수정 2013-05-29 08:29
(2) 포퓰리즘에 빠진 국회 - 선진국 의회에선 어떻게 하나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의 의원 입법 과정은 깐깐한 편이어서 졸속 입법 시비가 거의 없다. 민주적 절차에 따른 입법의 역사가 긴 이들 국가 역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야 정교한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브레이크 없는 의회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 선진국의 몇몇 입법 장치를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는 의원 발의 법안이 의회에서 정식 논의(청문회) 전에 대부분 폐기된다. 첫 번째 관문인 소관 상임위원회의 서류 심사를 통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낸 법안들은 한국의 감사원 격인 회계감사원(General Accounting Office)에서 엄밀하게 분석하고 그 결과를 상임위에 제출한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상임위는 가치 있는 법안을 고른다.

여기서도 80% 이상이 걸러져 상임위는 ‘법안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상임위는 한 달에 최소 한 차례 이상 회의를 열어 법안을 심사한다. 상임위의 서류 심의를 통과한 법안들은 청문회 심사를 받는다. 해당 법의 이해당사자, 전문가, 행정부처 관료, 이익집단 등이 참석한다. 청문회는 공개가 원칙이지만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사항 등은 비공개로 진행한다. 청문회 이후에는 소위원회가 찬·반 관점에서 법안을 조문별로 다시 면밀히 검토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 표결로 처리한다.

소위를 통과한 법안은 소관 전체위원회에서 다시 검토하고 문제가 없을 경우 본회의에 상정한다. 본회의 상정 후에는 내용과 중요성에 따라 쟁점 법안, 비쟁점 법안, 예산소요 법안 등으로 분류해 별도의 심사 절차를 다시 밟는다. 추가로 규칙위원회, 전원위원회 등에서도 검토하고 모두 통과되면 상원으로 넘긴다. 상원 심의, 양원 협의 조정 절차 등 마지막 관문을 넘으면 대통령 서명으로 법안은 생명력을 얻는다. 규제법안의 경우에는 상·하원 규제개혁 소위원회를 두고 추가로 면밀히 검토한다. 전진영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미국은 여름휴가 기간 등 특정 기간을 제외하고 항상 본회의가 열려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법안에 대해 논의해 ‘일하는 국회’ 이미지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의원 입법만 허용하는 영국도 전문적인 규제개혁 기구를 의회 내에 두고 있어 규제 법률이 쉽게 통과되지 못하는 구조다. 정부 각 부처에도 규제심사국이 있으며 상·하 양원에는 규제개혁을 전담하는 위원회를 각각 두고 있다. 캐나다에서도 ‘규제 점검을 위한 상·하원 합동협의회’를 두고 규제 법안을 집중 검토한다.

또 영국 규제정책위원회, 네덜란드 행정부담자문위원회, 스웨덴 규제철폐위원회 등도 규제 법안의 타당성을 촘촘하게 따지고 있다.

프랑스도 2008년 헌법을 개정해 입법에 따른 규제 영향을 평가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법안 제출권이 정부와 의회 모두에 있는 독일은 80% 이상이 정부 입법 법안이고 의원 입법만 가능한 미국과 영국도 대부분 법안이 정부에서 나온다”며 “한국과 달리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필요한 법만 새로 만들어진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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