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설 산업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
그는 농민이었고, 지금도 농업인이다. 바뀐 게 있다면 직장이다. 25년간 직접 농사를 짓다 이제는 영농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또 하나 변한 게 있다면 ‘농사’와 ‘농업’에 대한 생각이다. “개인 차원의 농사도 필요하지만,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농업을 산업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게 됐다.
지난 25일 경기 화성의 동부팜한농 토마토 유리온실에서 만난 김덕수 씨(52) 얘기다. 그는 토마토 경작 기술을 배워 노년에 자기 사업을 하기 위해 작년 말 이곳에 취직했다. 김씨는 “반년 동안 일하면서 나중에 세계 시장을 상대로 토마토를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꿈을 키우고 있는 이는 김씨뿐이 아니다. 20여년간 어업에 종사하다 올초 입사한 김영윤 씨(52)도 수출 역군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갖게 됐다. 그는 “몇 년 뒤엔 나도 토마토 온실을 세워 일본이나 중국 시장을 개척하고 싶다”고 했다.
유리온실 직원 70명의 과거는 대부분 이들과 비슷하다. 평생 화성 주변에서 농민과 어민으로 일했다. 이제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50대 전후라는 점도 같다. 화성 유리온실을 총괄하는 조홍석 동부팜한농 영농팀장은 “회사에서 농업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 유리온실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고령화 시대에 지역 농민들과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려는 뜻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좋은 취지에도 현실은 냉혹했다. 동부는 국내 농가가 키우는 토마토와 다른 품종을 키워 전량 수출하겠다고 했지만 농민들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농민들은 ‘함께 해외 판로 개척에 나서자’는 동부의 제의도 거절했다. 대신 동부팜한농의 캐시카우인 농약과 비료 불매운동으로 맞섰다. 매출 감소라는 직격탄을 맞은 동부팜한농은 지난 3월26일 유리온실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업성이 밝은데도 농민들의 반대와 반(反)기업 정서 탓에 유리온실 매각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반면 일본은 사정이 다르다. 한국과 일본은 2009년 기업형 영농을 키우기 위해 각종 규제를 풀었지만, 지금까지의 중간 성적은 천지 차이다. 한국에선 영농 기업이 사실상 전무하지만, 일본 내 농업 기업 수는 3년 만에 갑절이 됐다. 오랜 경기 침체에서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일본의 모습만 부러운 게 아니었다.
정인설 산업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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