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사태로 본 대기업의 조세피난처 활용
재벌닷컴 "24개 그룹, 125개 현지법인 운영"
전경련 "대부분 거래상대방 편의 위해 세워"
국세청 "법인 설립은 합법…탈세만 보겠다"
조세피난처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대기업 오너일가 명단이 공개된 데 이어 CJ그룹이 조세피난처를 통해 소득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다. 재벌닷컴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 조세피난처에 대기업들이 세운 현지법인 자료까지 공개했다.
○재계,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다”
해당기업과 경제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세운 것은 정당한 경영활동”이라는 것이다. 또 정상적 경영활동까지 탈세로 취급하는 것은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했다. 국세청은 기업의 절세행위와 개인의 탈세를 구분해 범죄에 해당하는 탈세는 끝까지 추적하겠다는 입장이다.
재벌닷컴은 공기업을 제외한 자산 1조원 이상 그룹 가운데 24개 그룹이 케이맨제도, 버진아일랜드, 파나마 등 9개 조세피난처에 125개의 현지법인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고 26일 발표했다.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125개 법인의 자산 총액은 5조6903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룹 별로는 SK가 63개로 가장 많았고, 롯데(12개) 현대(6개) 동국제강(6개) STX(5개) 등이 뒤를 이었다. 삼성은 파나마에 2개, 현대자동차는 케이맨제도에 1개의 현지법인을 각각 운영 중이다.
재벌닷컴은 “125개 법인 중 자산이 전혀 없거나 매출 실적이 없는 회사가 57%인 71개사에 달해 절반 이상은 이름만 있고 활동이 없는 사실상 페이퍼 컴퍼니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CEO스코어도 지난 7일 11개 그룹이 해외 조세피난처에 총 250개의 법인을 거느리고 있다고 발표했다.
해당 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마치 탈세와 범법인 양 몰아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또 공시 등을 통해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적법한 절차를 거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며 반박했다. 삼성 관계자는 “파나마에 현지 판매법인과 컨설팅회사를 운영 중이고 두 회사 모두 매출과 이익을 내고 있다”며 “조세회피 의혹과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SK 관계자도 “배를 발주할 때마다 실제 자금을 대는 해외 선주가 조세피난처에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는 것은 국제 해운업계의 상식”이라고 반발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국내 기업이 운영 중인 현지법인들은 거래 상대방의 편의를 위해 법 테두리 내에서 세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해당 지역에 법인을 보유하고 있는 것 자체를 범죄시하는 것은 마녀사냥”이라고 지적했다.
○구글 “세금 아끼는 것이 정상”
국세청의 입장은 중립적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했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며 “하지만 국내 자금이 조세피난처를 우회해 외국인 자금으로 둔갑해 들어오면서 탈세를 하거나, 돈세탁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 때문에 조세피난처를 예의 주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과거 자료를 정밀분석한 뒤 탈세혐의가 있는 경우에만 신속히 조사에 들어가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기업들은 대부분 조세피난처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 회계감사원(CRS)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지난해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 중 평균 43%를 조세피난처로 옮겨놨다. 구글, 페덱스,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최근 몇 년 새 미국 외 지역에 최소 100개 이상의 자회사를 세웠다. 해외 진출과 아웃소싱의 목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35%에 달하는 미국의 높은 법인세율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경제 위기로 미국 정부가 이들을 향해 칼을 겨누자 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구글은 여러 나라가 제공하는 인센티브를 따랐을 뿐이다. 세금을 많이 아끼는 방법을 거부하지 않겠다. 자본주의는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해영/김보라 기자 bon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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