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이 추락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 인도분 금 가격은 0.5% 떨어진 트로이온스(31.1g)당 1377.6달러에 마감됐다. 2011년 9월 온스당 1900달러까지 치솟았던 때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한때 “금 가격이 온스당 200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이제 그런 말은 어디서도 찾기 어렵다.
#"매도공세에 짓눌리는 금"금 ETF는 최근 10년 동안 금값을 끌어올린 주역이었다. 블룸버그통신은 “금 ETF들이 이달 들어 241만온스(약 68t)를 팔아치웠다”고 전했다. 이런 매도 공세 이면엔 ‘헤지펀드의 황제’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 같은 세력들의 환매 요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최근 소로스는 보유 중인 금 ETF를 모두 환매했다.
왜 큰손들이 요즘 황금을 던지고 있을까.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통신 등은 월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미국 등의 양적완화가 인플레이션(통화가치 추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게다가 ‘미국이 올해 안에 양적완화를 중단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요즘 달러가 강세인 까닭이다. 달러 가치와 금값은 상극으로 통한다. WSJ는 “상품투자의 귀재인 짐 로저스 등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목청을 높인 ‘화폐 시스템 붕괴’나 ‘달러 위기’가 일어나기 힘든 조건이 강화되고 있다는 게 월가의 진단”이라고 전했다.
#글로벌자금 금에서 주식으로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붕괴 우려도 거의 진정됐다. 유로존 경제가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침체이긴 하지만 통화 동맹에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워졌다. 게다가 최근엔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주가마저 강세다. 글로벌 자금이 금 시장을 탈출해 주식으로 이동하기 딱 좋은 조건이다.
자산 가격이 흔들리면 시장엔 꼭 나타나는 세력이 있다. 바로 ‘늑대 무리’라고 불리는 공매도 세력이다. 현재 글로벌 금시장에 쌓여 있는 공매도 물량이 8만 건 이상이다. 지난달 말보다 30% 가까이 늘어났다. 이들이 금을 빌려 팔아놓고 있는 규모다. 그만큼 금값을 누르는 압력이 크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쯤되자 금값 상승 대세가 끝났다는 진단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투자전문지 알파는 “뉴욕·런던 등 주요 금 거래소 주변에선 ‘황금의 슈퍼사이클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고 전했다. 슈퍼사이클은 자산 가격이 장기간 오르는 국면이다. 금값은 2001년 3월부터 2011년 9월까지 10여 년 동안이 대세상승 국면이었다. 그 사이 금값은 250달러 선에서 1900달러로 7배 이상 올랐다. 알파는 “금값이 2011년 9월 정점에 도달한 뒤 약 2년 동안 1500~1800달러 사이에서 오르내렸다”며 “주요 중앙은행들이 돈을 찍어내는 상황이어서 많은 투자자들이 금값 붕괴는 없을 줄 알았다”고 했다.
그들의 기대는 지난 4월11일 깨졌다. 그날 하루 금값이 13% 추락했다. 버블 양상을 보인 자산 가격이 갑자기 뚝 떨어지는 ‘민스키 모멘트(Minsky moment)’라는 진단이 제기됐다. 이는 미국 경제학자 허먼 민스키가 처음 밝혀낸 현상이다. 그는 “급락 이후 자산 가격은 일시 반등하기도 하지만 버블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요즘 다시 금값이 떨어지고 있는 게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흔들리는 금에 대한 신뢰
금값이 주저앉으면서 ‘금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리고 있다. 일반 투자자들은 금으로 전쟁, 천재지변, 경제 위기, 인플레이션 등의 충격을 회피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과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존 메이너드 케인스 영국 경제학자 등은 투자자들의 그런 믿음을 ‘환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버냉키 의장은 2010년 미 의회에 출석해 “금은 돈이 아니다”며 “현대 화폐는 금과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돈이 금에서 유래했다는 통념을 비판한 말이다. 케인스는 금 소유욕을 “야만 시대의 유습”이라고 했다. 일찌감치 사라졌어야 할 습관이란 얘기였다.
특히 버핏은 금값이 치솟던 2011년 “대중이 황금 환상에 취해있다”며 “금은 투자 대상이나 헤지 수단이 아니다”고 경고했다. 버핏은 “금을 살 돈으로 농업, 제조업체 등에 투자하면 농산물 등 상품을 생산하고 배당 등도 얻을 수 있다”며 “금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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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드바 시장은 이상과열…웃돈 줘도 '별따기'
국내 금 시장이 이상과열을 보이고 있다. 시장에서 웃돈을 줘도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자산가들이 저금리 시대에 새로운 투자처로 금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있는 데다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을 의식해 소득이나 재산을 숨겨 두려는 수요도 일부 가세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금값이 떨어진 틈을 타 일반 투자자들까지 저가매수에 가담하고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시중 금값은 계속 뛰어오르고 있다. 국민은행에서 팔고 있는 10g짜리 골드바 가격은 현재 59만570원이다. 반면 수요와 공급이 즉각 반영되는 현물시장인 종로에선 62만~63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은행보다 4~5% 값을 더 받는데도 ‘없어서 못 파는’ 수준이다.
금 생산 및 도소매업체인 한국금거래소 쓰리엠의 골드바 매출은 작년 12월 5억6000만원에서 지난달에는 40억원으로 늘었다. 이 회사 김안모 사장은 “2002년부터 금 도소매 시장에서 일했지만 지금과 같은 열풍은 처음”이라며 “거액 자산가들은 한 번에 1㎏ 이상씩 수천만원, 수억원 단위로 구매한다”고 말했다. 종로의 한 귀금속 도매업체 대표는 “지금은 10g 기준으로 10만원을 더 얹어준다는 고객이 나와도 물건이 없다”며 “손님은 넘쳐나는데 정작 팔 제품이 없어 속이 탄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골드바가 자금세탁 혹은 탈세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골드바의 경우 부동산처럼 등기부 등록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구매를 한 뒤 과세당국에 신고 없이 양도하거나 상속, 증여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올해부터 연 4000만원 이상에서 2000만원 이상으로 강화되면서 매매 차익이 비과세되는 골드바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은행들은 고객이 현금을 가져와도 계좌를 개설한 뒤 골드바를 살 수 있도록 내부 방침을 정해놨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골드바를 산 뒤 은행의 대여금고에 넣어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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