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금은 아주 특별한 금속이다. 위기에 강하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 빛이 난다. 특히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때 금의 위력을 실감했다. 당시 금모으기는 애국의 상징이었고, 부족한 달러를 채우는 화폐의 대용품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거의 금값이 뛰었다. 금이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인식된 덕분이다. 역사적으로 금은 ‘진짜 화폐’였다.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빙이 금과 대비해 종이돈을 ‘가짜 화폐’라고 표현한 이유다. 실제로 20세기 중반 브레턴우즈체제의 금태환제에서는 금이 궁극의 화폐였다. 금의 역사는 바로 인류의 역사다. ‘금=안전자산’이라는 공식은 하루 아침이 아닌, 금과 인간의 오랜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금값이 출렁이면서 때로 금에 대한 인류의 신뢰가 흔들린 적은 있다. 하지만 부(富)의 상징, 투자의 수단으로서 금의 위상은 영원할 가능성이 크다.
#황금이 지배한 인류의 역사
금속 중에서도 특히 금이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뭘까. 피터 번스타인은 저서 ‘황금의 지배·The Power of Gold’에서 금이 부(富)와 권력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금속이기 때문에 금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가 맥을 같이한다는 의미다. 고대인들에게 금은 귀한 존재였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황금을 절대로 파괴되지 않는 금속으로, 신성한 태양의 빛과 연관시켰다. 그들은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의 피부가 황금으로 되어 있다고 믿을 정도였다. 파라오인 투캉카멘이 죽자 100㎏이 넘는 황금관과 마스크를 만들어 넣은 것도 이 같은 믿음 때문이다.
기원전 31년.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아우레우스’(라틴어로 순금이라는 뜻)라는 금화를 만들어 로마제국의 공식 통화로 사용했다. 하지만 로마제국이 무너지면서 화폐로서의 금은 한동안 모습을 감췄다. 그런 금은 다시 중세에 들어와 빛을 본다. 1252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주조된 ‘플로린’이라는 금화는 한때 유럽의 기축통화 역할을 했다. 금화가 주목을 받으면서 납을 금으로 바꾼다는 연금술도 수백년에 걸쳐 난무했다. 만유인력 이론을 정립한 아이작 뉴턴이 1660년 이후 20년간 물리학 연구를 접고 연금술 연구에 몰두한 것은 당시 금이 인간을 얼마나 유혹했는지를 방증한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 전쟁이 치열한 것도 금의 유혹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금이 세계 화폐 역사에 등장한 것은 1816년 영국이 금본위제를 채택하면서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때까지 모든 국가의 통화는 사실상 일정량의 금에 고정됐다. 미국도 1900년부터 금본위제를 실시하다 1971년 닉슨 행정부 때 폐지됐다.
#세계경제의 바로미터인'금'
인류에게 금의 속성은 크게 부와 권력의 상징, 투자의 대상이다. 이런 속성이 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부풀렸고, 수많은 역사 속 전쟁의 빌미가 됐다. 위험 회피(헤지)는 금이 가진 또 하나의 속성이다. 이는 금의 가치가 다소 출렁거리더라도 인류의 영원한 투자 대상임을 의미한다. 글로벌 시장이 어수선하면 금은 빛을 발한다. 국지적 분쟁으로 리스크가 커지면 금의 투자매력은 커지고, 금값도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달러가치도 금의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달러값이 하락하면 반대로 금값은 오른다. 이런 원리는 금뿐만 아니라 원유 비철금속 등 다른 국제 상품시세에도 같이 적용된다. 달러가치 약세는 달러의 구매력이 떨어졌다는 의미이고, 상품을 팔려는 측에서는 가격을 올려 떨어진 구매력을 보충하려 하기 때문이다.
번스타인은 “금이 반짝이면 글로벌 경제의 재앙신호”라고 말한다. 금이 그만큼 불확실성의 대안투자라는 의미다. 경제가 안정되면 투자자금이 위험자산인 주식으로 쏠리고, 반대의 경우엔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채권이나 금으로 옮겨가게 된다. 최근엔 미국 유럽 등이 양적완화(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돈을 찍어 시중에 푸는 것)로 글로벌 시장에 달러가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저가 중국산 등의 이유로 인플레이션 압박이 약해지고 달러가치 역시 견조한 흐름을 보이면서 유가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달러 풀기-달러 가치 하락-금값 상승’이라는 전통적 유가공식이 좀 삐걱대고 있는 셈이다.
#전자부품·의료용구… 용도 다양
금은 장신구나 자산투자 외에 치과, 전자공업, 의료 진단 및 치료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금은 원자번호 79번의 원소로 원소기호는 Au다. 금은 화학반응성이 가장 작은 고체 원소 중 하나다. 공기나 물에 의해 부식되지 않고 원래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강한 산화제가 들어있는 진한 염산에는 녹는다. 전성(두들겨 펴지지 쉬운 성질)과 연성(잡아 늘이기 쉬운 성질)이 매우 크기 때문에 얇은 박이나 선으로 용이하게 가공된다. 금은 자연상태에서 덩어리(괴금)으로 발견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석영 또는 황화철 광맥에 작은 알갱이로 들어있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금의 역사가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알아보자. 경제적인 측면에서 금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논의해보자.
달러 가치와 금 가격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구체적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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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턴우즈체제… 달러 가치를 금에 연동시키다
금은 영국의 금본위제 채택(1816)으로 그 존재감을 다시 한번 과시한다. 금본위제는 화폐 가치와 일정량의 금 가치를 등가(等價)관계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금 1온스=20파운드’ 식으로 화폐의 가치를 금에 고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정해진 비율로 언제든 화폐와 금의 교환이 가능한 것을 태환제도, 이때 교환에 사용되는 돈을 태환화폐라고 부른다. 하지만 파운드 중심의 국제금본위제는 100년 만에 막을 내렸다. 1차 세계대전으로 각국이 ‘전비용 화폐’를 마구잡이로 찍어내면서 통화가치 추락으로 교환비율에 심한 불균형이 생겼고, 결국 영국은 1914년 금본위제 포기를 선언한다.
이후 어수선한 국제 통화질서는 1944년 큰 변화를 맞는다. 바로 ‘브레턴우즈체제’의 탄생이다. 미국을 포함한 44개국 대표들은 미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의 한 호텔에 모여 ‘달러 중심의 금본위제 부활’을 선언했다. 금 1온스는 미 달러 35달러로 고정시켰고, 다른 주요 통화들은 달러에 환율이 고정됐다. 하지만 달러 주축의 금본위제도는 생명이 더 짧았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무역적자가 커지고, 금태환 능력을 불신하는 사람들은 급속히 늘어났다. 특히 베트남전쟁은 결정타였다. 전비(戰費)용으로 찍어낸 미 국채 보유국들이 금으로의 교환(금태환)을 요구하고, 달러가치 추락을 예감한 달러 보유자들이 연일 금을 사들이자 미 중앙은행의 금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국 1971년 8월 닉슨 대통령은 금태환 정지를 선언했고, 브레턴우즈체제는 사실상 27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후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에서 출범한 ‘킹스턴체제’는 금본위제도에 공식적으로 종지부를 찍고, 변동환율제 부활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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