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침체에 빠져 있던 선진국의 경제 행보가 차별화되고 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의 무차별 양적완화 정책인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경제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반면 유럽은 그간의 각종 통화·재정정책에도 회복은커녕 최악의 불황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한동안 회복세를 보이는 듯하던 미국 경제는 올 1분기 들어 주춤하는 모습이다.
#'아베노믹스'로 활기찾는 일본
일본의 경기 회복세가 빨라졌다.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상승세를 보이고 연간 성장률 전망치가 예상보다 올라가는 등 ‘아베노믹스’의 효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일본 내각부는 지난 16일 올 1~3월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기 대비 0.9% 증가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분기 1.5% 이래 가장 높은 수치이며, 시장의 예상치를 웃돈 것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연간 3.5%의 성장률을 달성할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 경제분석가들은 올 성장률을 2.7~2.8%로 예상해왔다. 지난해 3분기 -0.9%였던 일본 GDP 증가율은 지난해 4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주가가 올라 소비자 심리가 개선되고 자동차를 중심으로 개인 소비가 늘어난 것을 큰 요인으로 꼽았다. 신문은 “수출 증가율이 1년 만에 플러스로 돌아선 것도 영향을 미쳤다”면서 “그동안 정부 주도 공공사업이 경기를 견인해왔다면 근래 민간 수요와 수출로 경기의 주도권이 넘어갔다”고 분석했다. 아베 총리의 경제정책, 즉 ‘아베노믹스’가 실물경제로 파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리 아키라 경제재정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개인 소비를 중심으로 한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 경제가 선진 7개국(G7) 중에서도 가장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백약이 무효인 유럽
유럽은 백약이 무효다. 지난해 단기국채무제한매입(OMT) 조치 발표 등 각종 통화 재정 정책도 허사였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유로화가 생긴 이래 최악의 경제 성적표를 받았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자산유동화증권(ABS) 매입 등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 유로존 1분기 성장률은 -0.2%를 기록했다 6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세운 5분기 연속 침체 기록을 깼다.
싱크탱크인 유럽개혁센터의 사이먼 틸포드 이코노미스트는 “매우 충격적인 숫자”라고 지적했다.
유럽 2, 3, 4위 경제 대국인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이 나란히 -0.2%, -0.5%, -0.5%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1위 독일은 0.1% 성장으로 간신히 체면치레를 했다. 유로존 역내 교역으로는 침체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 보여준 결과다. 역외 수출로 해결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피터 밴든 후테 ING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은 긴축 정책을 쓰고 중국의 성장세는 꺾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스페인 중앙은행이 자국 은행에 부실 채권을 평가손에 반영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이 경우 스페인 은행들의 재무제표는 더 나빠질 수 있다.
#지표 혼조의 미국
성장세를 이어가던 미국 경제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미국 연방정부의 예산 삭감이 경제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성장 속도가 둔화하고 있다. 또 경기 회복의 혜택이 일부 부유층에만 집중되면서 소득 불균형도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시장 예상치인 3%를 크게 밑도는 2.5%에 머물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암울하다(dismal)’고 최근 평가했다. 지난해 4분기의 0.4%와 비교하면 크게 나아졌지만 기업들의 재고 증가 등 계절적 요인에 의한 것일 뿐 경제의 기본 체질은 나아진 게 없다는 분석이다.
WSJ는 특히 역사적으로 볼 때 최근의 성장률 둔화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 이후 최근 15분기 동안 평균 2.1% 성장했다. 대공황 이래 최대 침체를 겪고 난 후인 1980년대 초반 15분기 동안 평균 5.3% 성장했고,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도 각각 3.4%와 2.9% 성장했던 것과 비교하면 경기침체 후의 회복 속도가 너무 느려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성장률 둔화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1분기에는 그나마 소비가 늘어나면서 경제 성장률에 2.24%포인트나 기여했지만 연초 세금 인상과 연방정부의 예산 자동 삭감(시퀘스터)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지난달부터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고 WSJ는 전했다.
설상가상으로 소득 불균형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경기 침체가 공식 종료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미국에서 순자산 50만달러 이상 가구는 자산 규모가 21.2% 늘어난 반면 나머지 가구는 4.9% 줄어들었다.
남윤선 한국경제신문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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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증시는 상승 열기…지표와 '디커플링'
미국 양대 증시가 연일 상승세다. 지난 19일 S&P500지수는 1667.40에 장을 마감하며 신기록을 경신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도 15,354로 사상 최고치다.
유럽 금융시장도 상승세다. 독일 DAX30지수는 이날 사상 최고치인 8410.04를 기록했다. 유럽 종합지수인 Stoxx600은 307.97로 약 5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도 아베 정부의 대규모 양적완화에 힘입어 올 들어 35% 올랐다.
증시만 보면 세계 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물 경기는 딴판이다. 유로존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18개월째 50 이하에 머물고 있다. 50을 넘으면 경기 확장, 50 이하일 땐 경기 위축으로 해석한다. 미국 제조업 공장 주문도 급감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올 3월 제조업 공장 주문은 4672억8800만달러로 전월보다 4%나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 8월 이후 최저치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미국 4월 제조업지수는 50.7로 전달의 51.3에서 하락, 올해 최저치를 기록했다. 서비스업지수도 53.1로 지난해 7월 이후 최저치다.
유로존 통계청인 유로스탯에 따르면 유로존 공장 가동률은 지난 1분기 76.5%로 그리스 구제금융 이후 시장에 위기감이 팽배했던 2010년 3분기(77.9%)보다도 낮아졌다. 고용지표는 더 심각하다. 3월 유로존 실업률은 12.1%로 유럽연합(EU)이 실업률을 발표한 1995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신들은 “중앙은행의 양적완화가 두 번째 글로벌 금융위기는 막았지만 유럽은 여전히 멈춰선 데다 중국의 성장은 둔화하고 있고, 미국도 회복 속도가 느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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