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들 '성급한' 경제민주화에 우려 "개념설정, 수위조정이 우선"

입력 2013-05-24 14:04
수정 2013-05-25 23:37
獨 사민당 '경제민주주의' vs 기민당 '사회적 시장경제' 혼란
'헌법 119조 2항' 시각차 비롯… 공정성·투명성 확보가 1단계


최근 새 정부 부처 수장 간에도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과 관련해 관련 학계 전문가들 역시 성급한 경제민주화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념설정과 수위 조정이 우선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24일 학계에 따르면 일부 대학 교수들은 경제민주화가 개념이 불분명하고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성급하게 밀어붙이기보다 정확한 개념을 정의해 실행 수위를 설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 경제민주화, 할 것인지보다 '무엇인지'가 우선

정동일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부)는 최근 한국사회학회 대토론에 참석해 "실체가 모호하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개념일수록 유행처럼 빠르게 확산되는데, 경제민주화도 마찬가지"라며 "핵심은 경제민주화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가 아니라 '경제민주화가 도대체 무엇인가'부터 밝혀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노대래 공정위원장과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의 논쟁과 관련, 경기개발연구원 최석현 연구위원은 "경제민주화의 역사적 연원은 서구사회의 경제민주주의"라고 전제한 뒤 "다만 경제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포함한 철학적 개념인 데 반해 경제민주화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포괄해 불명확하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각 정당이나 집단이 정치적 입장에 따라 경제민주화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최근 노 위원장과 방 장관은 페이스북에서 논쟁을 벌였다. 기존 여야 간, 진보·보수 간 정치적 의견대립과는 다른 양상으로 주목받았다. 독일 기독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의 사례를 들어 '한국에 적합한 경제민주화'를 논하기도 했다. 노 위원장은 사회적 시장경제(기민당)에, 방 장관은 경제민주주의(사민당)에 가까운 논리를 폈었다.

논란은 '경제민주화 조항'인 헌법 제119조2항을 둘러싼 견해차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을 인정한 119조2항을 설계한 장본인은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과)는 "경제민주화 논란을 촉발한 계기가 이 조항에 대한 해석"이라며 "시장주의자는 시장질서와 자유를 강조한 119조1항에 대한 부차적 조항으로만 보는 반면, 제도주의자는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허용한 조항으로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119조2항은 자유시장경제 기본원칙을 보완하기 위한 조항일 뿐'이라고 언급해 논란을 빚은 것도 이 때문이다.

◆ 공정성·투명성 원칙 '낮은 수위'부터 차근차근

현실적으로 경제민주화를 추진해야 한다면 적절한 수위 조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제민주화 정책을 △경제적 약자의 권익 증진 △유·무형 상품 또는 금융거래의 공정성 제고 △대기업 지배체제 견제의 세 가지로 요약한 김문조 고려대 교수(사회학과)는 "경제적 약자나 기업 지배구조 문제는 자본주의 핵심가치와 연동된 것으로 엄청난 이견과 반발이 예상된다"며 "정부가 거래 공정성에 관한 입법절차를 우선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제민주화의 개념이 확실치 않고 추진에도 난항이 예상되므로 공정성, 투명성 같은 '낮은 수준'의 입법부터 합의해 실행해야 한다는 논리다.

정동일 숙명여대 교수는 "경제민주화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이며 최소한의 조건, 실현 가능하고 비교적 합의가 쉬운 요소인 투명성과 공정성에 논의를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비교적 논란이 적은 편인 공정성 관련 경제민주화 법안들조차 세부 내용에 들어가면 단순한 사법적 공정성의 잣대로는 판별할 수 없는 철학적·이념적 논점들이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의 하도급거래 공정화법(하도급법), 가맹거래사업거래 공정화법(프랜차이즈법),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등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임운택 계명대 교수(사회학과)는 "현재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담론 수준에서 매우 파편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며 "보다 구체적인 실행담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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