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등대' 함께 켜면 훨씬 밝아지겠죠

입력 2013-05-22 16:53
수정 2013-05-22 21:04
김인환 전 총신대 총장·김범곤 '밥퍼 목사'의 아름다운 동행

임대보증금 4억 없어 문닫을 판…김 전 총장 적극 돕겠다며 합류
사단법인 '참좋은친구들'로 전환



22일 오후 서울 중림동의 노숙인 구호시설 ‘사랑의 등대’. 한눈에 봐도 학자풍 인상이 짙은 한 남자가 식당과 주방을 분주히 오가며 일을 거든다. 구약학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김인환 전 총신대 총장(67)이다. 김 전 총장은 수요일 오후면 어김 없이 이곳에 온다. 배식 봉사와 설교를 하기 위해서다. 배식은 저녁이 돼서야 하지만 김 전 총장은 오후 서너시면 ‘사랑의 등대’에 도착해 식사 준비를 돕거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김 전 총장이 노숙인 구호활동에 뛰어든 것은 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한 ‘사랑의 등대’를 구하기 위해서다. 예수사랑선교회(대표 김범곤 목사·62)가 운영하는 ‘사랑의 등대’는 서울역 노숙인들의 아버지로 통하는 김 목사가 24년 동안 운영해 온 노숙인 구호시설이다. 하루에 아침저녁 두 끼를 이곳에서 해결하는 노숙인과 쪽방촌 사람들이 500명에 이른다. ‘사랑의 등대’는 이들을 위해 매일 1000명분의 식사를 제공한다. 노숙인 구호사업을 시작한 이후 서울역 주변의 후암동, 양동, 동자동 등으로 열 번도 넘게 이사를 다니다가 2008년 이곳에 정착했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부터 이 시설이 큰 위기에 직면했다. ‘사랑의 등대’가 세든 건물의 임대보증금 4억원을 내줬던 익명의 독지가가 보증금을 회수해야 할 사정이 생겨서다. 김 목사는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이 독지가의 회사와 개인 사정이 극도로 악화돼 임대보증금을 회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며 “다음달까지 임대보증금을 새로 마련하지 못하면 건물을 비워줘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사랑의 등대’가 입주한 건물은 식당과 주방, 노숙인 숙소와 사무실 등 660㎡ 규모. 김 목사는 “서울 지역 노숙인의 60%가 서울역 인근에 집중돼 있고, 여러 종교단체와 구호기관이 노숙자들의 식사를 돕고 있지만 여기처럼 정해진 장소에서 고정적으로 오랫동안 구호사업을 전개하는 곳은 찾기 힘들다”며 “당장 노숙인 500여명을 어디서 먹여야 할지 큰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사정을 전해 들은 김 전 총장은 “30년 이상 대학에 몸담으며 쌓은 인맥과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 김 목사를 돕겠다”며 나섰다. 두 사람은 지난 2월 ‘사랑의 등대’를 사단법인 ‘참좋은친구들(trulygoodfriends.org)’로 전환하고 노숙인 무료급식과 재활, 취업 알선, 쉼터 운영, 의료 연계 서비스, 긴급구호 등의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후원조직도 체계적으로 운영키로 하고 주대준 KAIST 부총장, 이동한 인텔코리아 전무, 정민근 안진회계법인 부회장, 백오현 법무법인 보람 대표변호사, 이만순 CTS 부사장 등을 발기인으로 참여시켰다.

법인의 이사장을 맡은 김 전 총장은 “20년 전 김 목사님의 총신대 특강에서 노숙인 구호의 실상을 접했을 때 ‘나중에 은퇴하면 구호현장에서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는데 이제 그 약속을 지키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김 목사는 “총장님이 와주셔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라며 든든해했다.

이들이 당장 해결해야 할 숙제는 시설 임대보증금 마련이다. 김 목사는 “예수님이 그랬듯이 노숙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남남이 아니라 서로 좋은 친구가 돼야 한다. 기부가 아니라 빌려줬다가 나중에 찾아가도 좋다”며 기업이나 단체, 독지가의 도움을 호소했다. (02)754-0031~2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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