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현대판 通婚圈, 그 씁쓸한 현실

입력 2013-05-19 17:11
수정 2013-05-20 01:58
제적 득실만 따지는 결혼풍속…취직도 어려운 현실 탓 크지만 사회적 불평등 고착될까 걱정돼

함인희 < 이화여대 사회학·교수 hih@ewha.ac.kr >


최근 한 결혼정보회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30세를 전후한 미혼 남성의 배우자 선택 기준이 첫째는 연봉, 둘째는 ‘착한 여자(마음씨가 곱다는 뜻이 아니라 외모가 훌륭하다는 뜻이라 한다)’, 그리고 셋째는 처가의 경제력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겉보리 서 말만 있으면 처가살이 안 하겠노라’고 했던 아버지 세대와 비교해보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된다.

2012년 혼인 통계를 보면 작년 한 해 혼인 건수는 32만7100건으로 이전 해에 비해 2000건 감소했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남녀가 결혼을 미루거나 미혼 상태로 남게 되는 이유로는 ‘취업은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가치관의 변화와 더불어 경제적 안정이 결혼의 전제조건으로 부상함에 따라 정규직 입성도, 전셋방 구하기도 만만치 않은 각박한 현실이 지목되고 있다.

한데 돌이켜보면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의 부모 세대는 단칸 셋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이라고 믿고 알뜰살뜰 살림하고 한 푼 두 푼 저축하여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는 했다. 정치적으로는 암울할 뿐이었고, 경제적으로는 그렇게 빈곤할 수 없었지만 당시의 젊은 세대에겐 낭만적 사랑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덕분에 입주 가정교사와 주인집(?) 딸 사이의 풋풋한 사랑, 노동운동에 앞장섰던 명문대생과 그를 따르던 여공(女工)의 애절한 사랑, 집안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고학생과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집 딸의 운명적 사랑 등 계층을 초월하여 결혼에 성공한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회자되고는 했다.

부모 세대에게 결혼이란 누구나 구입해야 하는 필수품이었다면, 자녀 세대에게 결혼이란 매우 신중히 숙고하여 구입을 결정해야만 하는 사치품이란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더더욱 부모 세대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 푼 두 푼 저축한다 한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가 요원한 현실 또한 그 누가 부인하리요만, 물질적 안락이 정서적 충만감을 압도하는 요즘의 결혼 풍속도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이런 결혼 세태의 변화는 한국 사회가 저속성장시대로 접어들면서 계층 이동의 폭이 급격히 줄어들고 계층 간 불평등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은 물론이다. 이젠 개천에서 용 나기도 불가능하거니와, 설혹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하더라도 용의 승천을 위해 쉼 없이 뒷바라지를 해야 하니 개천에서 난 용은 사양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이미 초혼 연령이 남자 32.1세, 여자 29.4세로 만혼이 대세가 된 상황이요, 결혼은 위험한 비즈니스임이 충분히 인식된 상황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현명하게도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은 안 하겠다고 한단다. “직접 쌀 사서 밥을 해 먹는 것보다 이미 해 놓은 밥을 먹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솔직한 속내도 당당히 표현하고 있음에랴.

그러노라니 현대판 통혼권(通婚圈)이 새롭게 부활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의 통혼권이 주로 성(姓)씨를 기반으로 가능한 혼인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통혼권은 양가 부모 경제력과 당사자들 직업이 첫째 기준으로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산후조리원에서 맺어진 인간관계가 평생을 간다’는 유머까지 등장한 마당에야.

물론 계층, 인종, 종교, 가치관 등에 있어 비슷한 배경을 지닌 이들 간의 동질혼이 서로 다른 배경에서 온 이질혼보다 결혼 이후 적응도 용이하고 전반적인 결혼생활 만족도도 높게 나타남은 다양한 연구가 입증하고 있다. 신분사회일수록 조혼 풍습이 발달한 것은 남녀 간 사랑이 신분질서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는 주장은 꽤 흥미롭다. 지금의 냉정한 현실 앞에서 대책 없는 낭만적 결혼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정작 결혼 앞에서 경제적 득실을 꼼꼼히 따지는 젊은이들을 보자니, 결혼이야말로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주범이란 현실이 못내 안타깝게 다가온다.


함인희 < 이화여대 사회학·교수 hih@ewha.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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