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정부·학계 모두 '인기 영합'…고용유연성 '역주행'

입력 2013-05-13 17:34
수정 2013-05-14 02:53
고용유연성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자 (上) 쏟아지는 포퓰리즘 입법

"이젠 세상 바뀌었다" … 경제민주화 바람에 영합
차별대우 징벌적 배상제 등 과거 '민노당의 법안' 추진
파견 확대·기간제 연장 등 경쟁력 높이는 정책 '찬밥'



“파견근로 대상 확대요? 지금은 말도 못 꺼냅니다. 고용유연성 문제를 거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고용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이명박정부 초기 기업의 경쟁력과 성장동력을 높이기 위해 고용부가 추진하던 파견근로대상 확대와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등의 정책은 왜 추진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이 관계자는 “고용유연성 문제는 고용부 내에서는 물론 새누리당과의 정책 협의, 노·사·정 대화 창구 어느 곳에서도 의제로 올리지 못한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설명했다. 고용부 정책조율 담당 한 서기관도 “최근 고용정책 방향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보다 정치 바람에 떠밀려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고용정책에도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 난무하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정부, 학자들도 정책 입안이나 자문 때 기업 경쟁력과 고용창출보다 분배와 복지, 평등에 초점을 맞춰 판단하고 있다. 남성일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우리 사회는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퓰리즘에 사로잡힌 정치인이 된 것 같다”며 “욕먹는 얘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으니 나라가 합리성을 잃고 목소리 큰 사람과 조직화된 소수단체만 잘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퓰리즘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된 정치권에서는 여야 모두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경쟁적으로 추진 중이다. 민주당에서 추진 중인 기간제 사용 사유제한은 노무현정부 때 당시 여당이지만 상대적으로 좌파정책을 펼쳤던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에서도 아예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진보 성향의 민주노동당(진보신당 전신)만 적극 도입을 주장했던 제도다. 지금은 이 제도의 도입을 민주당에서 적극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 역시 포퓰리즘적 스탠스를 취하긴 마찬가지다.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 때 적극 추진했던 파견근로 대상 확대, 기간제 기간 연장 등 고용유연성 확대 법안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에 법안 내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대신 주로 진보당에서 주장했던 △차별대우에 대한 징별적 배상제 △비정규직 차별 때 시정 신청권 노조에 부여 △정년 60세 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에 대한 입법화를 추진, 정년 60세 의무화 등은 이미 법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 역시 과거 민노당에서 추진하던 △기간제 근로자 사용사유 제한 △동일가치 노동 동일임금 명시 △불법파견 시 고용한 것으로 의제 △정리해고 요건 강화 등을 그대로 베껴 추진 중이다. 노무현정부 때 재야 노동운동가 출신인 이목희 열린우리당(현재 민주당) 의원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 등이 빠져 있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법안을 반대하는 민노당에 대해 “사이비 진보와의 전면투쟁” “비정규직법안을 반대하는 세력은 쇠망” 등의 표현까지 썼다. 민노당이 너무 앞서 나간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지금은 여야 모두 관심을 쏟는 법안이 되고 있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은 방향성으로 볼 때 맞지만 속도 조절 없이 성급하게 일시적으로 추진하면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회 전체에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노동 관련 학계도 고용유연성보다는 노조의 경영 참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남 교수는 “학자들이 욕먹는 얘기는 절대로 안 한다”며 “교수들이 정치적 판단, 정무적 판단이란 얘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다 보니 노동계 등의 무리한 요구도 줄을 잇고 있다. 사내 하청근로자의 전원 정규직화, 해고자 원직복직 등을 비롯해 시행된 지 2년이 다 돼 가는 타임오프제도의 전면 재조정 등도 노동계가 제기하는 주요 요구 사항 중 하나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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