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107> 하녀들의 수요를 기반으로 형성된 대중문학

입력 2013-05-10 15:32

오늘날 문학은 가장 대중적이며 보편적인 문화예술의 장르 중 하나다. 연중 미술관 한번 안가는 사람도, 음악회 한번 안가는 사람도 책 한 권 사서 집에서 틈나는 대로 읽는 사람들은 흔히 목격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문학을 우리는 흔히 대중문학이라고 하는데, 이런 대중문학은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서 가장 쉽게 접하는 문화생활이 되었다.

하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대중문학이라는 장르는 형성되지 못했다. 그것은 음악이나 미술과는 달리 문학 작품을 즐기기 위해 책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글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여가 시간을 충분히 확보한 소비자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따라서 대중문학이라는 장르가 형성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초의 대중문학의 수요자로 등장한 계층은 다름 아닌 하녀, 집사, 문지기, 가정교사와 같은 일련의 가사노동자들이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부를 축척한 신흥 중산층은 귀족들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정에 2~3명의 하인을 두기 일쑤였으며, 많게는 40명 가까운 하인들을 고용한 중산층 가정도 있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19세기에는 마부, 집사, 하녀, 가정교사, 유모 등의 가사노동자의 비중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1851년 당시 노동 관련 통계를 보면, 영국의 하녀 수는 100만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당시 가사노동자가 전체 직업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최초의 대중문학 수요자

이들 가사노동자는 그 이전의 형성된 다른 노동자 계층인 공장노동자와는 다른 특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공장 근로자와 달리 가사노동자로 근무하기 위해서는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해야 했다. 가사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계층은 과거 귀족계층을 비롯한 신흥 부유층으로 이들은 하인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알 때 훨씬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문자 해독력을 갖춘 가사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구하기가 훨씬 용이하게 되었고, 기존 가사노동자 중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없었던 사람들도 글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가사노동자들은 비교적 쉽게 글을 배울 수 있었다. 그들 주위에 이미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동료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주인의 서재에서 쉽게 책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많은 수의 가사노동자들은 이제 글을 해독하는 능력을 보유한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대두되었다. 또한 가사노동자들은 공장근로자와 달리 여유 시간도 많았다. 어쩌다 모시는 주인이 장기간 집을 비우게 되면 온종일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여유 시간에 문학 작품은 가장 좋은 벗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이야기 신문 큰 인기

가사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학 수요층이 생기면서 이에 부응하는 형태의 문학 작품이 공급되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등장한 형태는 오늘날의 타블로이드 신문과 유사한 내용으로 구성된 이야기 신문(story paper)이었다. 일반적인 신문이 시사적인 내용과 정보들을 위주로 구성된 것에 비해 이야기 신문은 멜로 소설, 자극적인 내용들과 삽화 등으로 구성된 신문이었다. 특히 이러한 이야기 신문들은 값이 저렴했기 때문에 글을 읽을 수 있는 노동자 계층에서 크게 각광받기 시작한다. 특히 1850년 경에 등장한 뉴욕 위클리 같은 이야기 신문은 주당 35~40만부 가까이 판매되기도 하였다.

가사노동자를 비롯한 문자 해독력을 갖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 신문의 성공에 주목한 출판사들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염가 도서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산층은 정장본의 순수문학을 즐기고 있었지만, 가사노동자들은 고가의 정장본 문학책을 사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서적들은 저가로 생산해야만 전달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래서 출판사들은 싸구려 종이를 사용하고, 원고료를 싸게 줘도 되는 무명작가들을 고용해 자극적인 내용들로 가득찬 문학 작품을 마구 써내기 시작했다. 당시 이러한 염가 소설들의 주인공으로 아름다운 하녀 내지 여공이 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이들 서적의 주요 고객층이 가사노동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주로 출판사 사장은 중산층 출신이 많았다.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하인을 위한 문학 작품의 질적인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출판사들은 신문기자, 초등학교 교사 등 무명의 작가를 고용하여 그들에게 등장인물·구성뿐 아니라 주요 장면까지 일일이 지정해 주면서 많은 작품들을 기계처럼 생산해 낼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대중문학은 몇 가지 종류로 장르화되어 진화했다. 범죄 미스터리 멜로 소설 등은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장르였다.

가사노동자 이외에 가내 수공업에 종사하던 근로자와 사무직 직원들도 새로운 문학 작품의 독자층을 이루었다. 주로 양복, 구두, 제과 등의 일상생활 용품을 생산하는 일에 종사하는 가내 수공업 근로자들과 은행원 개인 비서 등의 사무직 종사자 역시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있었기에 새로운 문학 작품을 즐길 수 있었다.

가사노동자와 가내수공업 종사자 그리고 사무직 직원들은 점차 자신들이 즐겨 있는 서적들도 중산층의 서적들과 마찬가지로 보다 나은 형태의 책으로 발간되길 원했다. 이런 수요에 부응하고자 등장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페이퍼백(paperback) 도서다.

오늘날 대중문학이 일반적으로 발간되는 형태로 자리매김한 페이퍼백은 종이표지와 내지 모두 중질지 이하의 용지를 사용하여 저렴한 가격에 발간되는 서적들을 말하는데, 주로 대중 문학을 염가에 대량으로 제작하여 공급하는 방식으로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최초의 페이버북 발간 출판사로 알려진 영국의 펭귄북스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양질의 대중서적을 출시하여 공급하고자 하는 목적 아래 발간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펭귄북스가 각광을 받았던 이유는 휴대가 편한 작은 크기로 서적을 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산뜻한 디자인으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장수요가 만들어낸 문학 발전

초창기 대중문학은 주요 소비층과 발간 형태 및 내용에 있어서도 기존의 순수 문학과는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두 문학 장르 간의 경계는 곧이어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순수문학 작가들은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대중문학의 수요층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영화화하거나 할리우드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타협하기 시작한다. 이들 순수문학의 작가가 대중문학을 쓰기 시작하면서 대중문학의 지위도 크게 상승하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순수문학 역시 대중문학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상류층의 교양 도서로 자리매김하면서 변모해 온 순수문학 역시 대중문학의 범죄 스릴러 과학 소설의 장르를 차용하거나 통속적인 표현 내지 외설적인 내용을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순수문학에서는 금기시한 이러한 시도들로 인해 이제는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중문학이 이처럼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진화해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이들 대중문학에 대한 지속적인 수요와 이를 바탕으로 한 대중문학 시장의 형성에 크게 기인한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에 대한 계층 간의 명확히 구분된 가치관 내지 문화적 행태가 시장의 원리에 의해 허물어진 오늘날의 상황에서 시장원리의 저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

경제 용어 풀이

▨ 수요(demand)

일정기간 동안 소비자가 재화·서비스를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계획)를 수요라고하며, 이는 필요와는 달리 구매하고자 하는 특정의 재화와 서비스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가격을 연관시킨 개념으로서, 일정기간에 걸쳐 측정되므로 유량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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