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국제화엔 대형화가 필수
국내 제조업 성장패턴 참조하고
대형 M&A 적극 뛰어들어야 " "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객원논설위원>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동안 글로벌 금융위기, 경제민주화 논쟁, 국내 정치일정 등 험난한 산을 넘었다. 세상도 많이 변했다. 민주노동당이 처음 제안했던 임원보수 개별공시가 새누리당 정권에서 입법으로 성사됐다는 것이 상징적이다. 그런데 너무 오래 걸렸다. 외국의 금융회사들은 그 사이에 이미 새 규제환경에 적응해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를 다 소화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금융위기 때 전범 1호였던 합성 부채담보부증권(CDO) 시장이 살아난다는 보도도 나온다. 씨티그룹만 지난해에 20억달러어치를 팔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업계는 바로 다음 과제에 매달리는 게 옳다. 이제는 국제화와 대형화다.
금융산업의 국제화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간 길을 따라가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금융은 아무리 복잡해도 결국 채권과 채무의 문제다. 즉, 사람과 사람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금융은 낭만적”이라고도 했다. 전화기, TV, 자동차가 세계무대에 진출하는 것과는 다르다. 다른 언어, 문화, 사회의 장벽을 더 많이 극복해야 한다. 이는 인력의 국제화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내부 인력의 교육과 글로벌 인재의 스카우트가 필요하다. 인센티브 체계도 정비돼야 한다.
최근 대우증권의 인도네시아 온라인 증권사 인수는 고무적인 소식이다. 그러나 성급한 주문인지는 몰라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이 미국, 유럽에 입지를 구축해야 진정한 국제화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과욕인가. 애플, 도요타 등과 글로벌 시장에서 힘을 겨루고 있는 기업들은 다름 아닌 한국 기업들이다. 금융사는 해외진출 시 국내 제조업체들의 브랜드 시너지 덕을 볼 수는 없을까. 현대캐피탈이 현대자동차와 콤비로 미국시장에 들어갔듯이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에서는 금산분리가 금과옥조이고 ‘일감 몰아주기’라는 말이 만들어져서 계열사 간 거래가 거의 범죄시돼 가고 있다.
금융이 점점 장치산업화되는 경향은 있으나 뛰어난 두뇌, 즉 소프트웨어의 비중이 크다는 점에는 변화가 없다. 워런 버핏이 “합성 CDO가 뭔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75만 페이지의 문서를 읽어야 한다”고 했듯이 금융은 수학적 기초 위에서 작성된 방대하고 정교한 문서의 산업이다. 우리는 문자와 문서에 밝은 민족 아닌가. 대학입시에서 의과대학 다음으로 수리과학부가 가장 인기 있다는 소식도 나쁘지 않다. 수백조원 규모의 금융자산이 몇 개의 방정식에 의존해서 운용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다. 금융산업은 수학천재들이 주도해 왔다. 이렇게 보면 요즘 유행하는 창조금융이라는 것이 복잡한 파생금융상품이 주도하는 그림자 금융을 오히려 발달시키자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든다.
국제화에는 대형화가 필수다. 국내에서도 금융투자회사들은 시쳇말로 ‘을’이라고 한다. 예컨대 회사채 발행 제도가 지난해에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발행사들이 사실상의 주관사 역할을 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법령이 상정하는 대로 기업실사가 이뤄지고 수요예측이 진행돼 선진적으로 기제가 작동하려면 쉬운 말로 ‘갑’적인 금융투자회사가 있어주면 좋겠다고 한 금융회사 임원이 푸념하는 것을 들었다. 대형화가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를 떠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금융업은 채무자의 신용과 사법제도에만 의존하는 위험한 사업이어서 악덕 고리대금업자가 될지, 신뢰받는 은행가가 될지는 결국 사업 규모가 결정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경제민주화를 표방하는 새 정부 출범 후에 특히 재벌그룹과 대형회사들이 ‘튀지 않으려는’ 분위기 때문에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서지 않는 상황은 하루빨리 종식돼야 할 것이다. 세계적인 M&A 열풍 속에 우리만 잠잠하다.
결국 필요한 것은 난세의 리더십이다. 해당하는 본인의 운명은 파란만장해질지 모르겠지만 메가뱅크이든, 유니버설뱅크이든, 대형 인수·합병이든, 업계 전체를 종횡무진 끌고 나갈 걸출한 금융영웅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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