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사회에 찌든 우리들의 초상…'영혼 수집가'의 붓끝서 피어나다

입력 2013-05-05 17:34
수정 2013-05-05 23:30
미국 인물화 대가 앨리스 닐 아시아 첫 초대전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서
1940년 이후作 15점 선봬


“예술은 역사의 형태로 남는다. 나는 화폭에 삶과 시대정신을 기록하기를 원한다. 이게 내가 세상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그래서 캔버스를 나누는 일이 나에겐 그 무엇보다 즐겁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 셸리가 ‘시는 순간의 기념물’이라고 말했듯 나에게 그림은 시대정신이다.”

영국의 누드·인물화 거장 루시앙 프로이드와 쌍벽을 이루는 미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인물화가 앨리스 닐(1900~1984)의 ‘예술 참여론’이다. 1960~1970년대 미국 화단을 풍미했던 미니멀리즘이나 개념주의 미술에 동조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주의적 화풍을 고수한 닐은 산업사회의 인간상을 깊이 있게 그려냈다. 그래서 그의 예술적 주제는 ‘삶과 역사’였다. 작품 속에 프랭크 오하라, 앤디 워홀, 로버트 스미슨 같은 아티스트나 유명 정치인, 친구, 연인, 가족 등 주변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가 내달 2일까지 펼치는 ‘사람과 장소-앨리스 닐 전’에선 이 같은 그의 예술정신을 한자리에서 느껴볼 수 있다. 닐은 유명 화가 로버트 헨리가 쓴 ‘예술정신’을 성경처럼 아끼며 산업사회의 문제와 불합리한 현실에 관심을 갖고 리얼리즘에 인물화를 접목시키는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무어미술대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그에게 1974년 뉴욕 휘트니미술관의 회고전은 국제 화단에서 재조명받는 계기가 됐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2000년에는 휘트니미술관 필라델피아미술관 워커아트센터 등 세계적인 뮤지엄에 잇달아 초대됐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닐의 서울 작품전에는 1940년대부터 그가 작고한 1980년대 초까지 그린 인물화 15점이 걸렸다.

‘영혼의 수집가’로 불리는 닐의 화풍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내면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나이 성별 지위 같은 겉모습이 아니라 모델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얻은 내면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여성을 전형적 어머니상이나 이상적 누드화로 국한하는 통념에서 벗어나 솔직하고 사실적인 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한평생 예술을 즐기며 보헤미안으로 살다간 닐에게 인간이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모델에 머물지 않는다. 1978년작 ‘앤 서들랜드 해리스와 네일’, 1948년작 ‘수 실리와 그녀의 남편’에서 보듯 사람들의 모습은 ‘창작의 샘물’인 동시에 그림을 구성하는 ‘미장센’의 무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가슴을 저미는 애틋함과 함께 때로는 기이하고 불안한 느낌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때문에 모델들이 매우 불편해 했고, 초창기 그의 작품은 잘 팔리지 않았다. 닐은 생전에 “모델의 인간성을 나타내기를 원했고, 그 인물들이 살고 있는 시대를 솔직하게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방한한 닐의 아들 히틀리는 “어머니는 미국 주류 미술계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때 소외됐지만 후대 작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며 “인류 전체를 사랑하며 살았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고 전했다. (02)2287-3546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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