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만난 모교 총장 - 김병철 고려대 총장·이수동 STG 회장
대학이 배출한 좋은 인재가 기업 발전 시키고 기업은 대학과 성과 공유
사장 비난하기 앞서 창업 한번 해보시라 기업가 고충 실감할테니
고려대는 1905년 보성전문학교로 출발해 올해 108주년을 맞았다. 우리 민족이 세운 첫 대학으로 ‘호랑이’ ‘막걸리’ ‘토종’ 등 한국적인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다. 고려대는 그러나 가장 글로벌화된 대학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연간 교환학생은 2117명(전체 3위), 외국인 유학생은 1799명(5위)이다. 작년 여름 계절학기에 고려대를 찾은 외국 학생은 국내 대학 중 가장 많은 1400여명이었다. 김병철 고려대 총장이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부분도 바로 ‘세계로 뻗어 나가는 기상’이다. 이번 ‘CEO가 만난 모교 총장’ 기획 대담에서 김 총장과 고려대는 미국에서 정보 시스템 업체를 창업해 연 매출 2억달러의 기업으로 키워낸 이 대학 산업공학과 출신 이수동 STG 회장을 파트너로 초대했다. 이 회장은 지난 3일 열린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교를 찾았다.
▷사회=글로벌 마인드를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김병철 총장=세계를 개척하려면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협력할 줄 아는 자질이 필수적입니다. 글로벌 마인드는 선진국만 쫓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도 보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고려대는 글로벌리더십센터나 단과대학별로 다양한 해외 봉사 프로그램을 마련해 나눔의 정신을 가진 글로벌 리더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려대 학생들은 신입생 때부터 동기 간, 선후배 간 끈끈한 유대관계를 통해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인간관계를 배우면서 나눔의 정신을 함양하지요.
이수동 회장=1979년 이민갈 때 세계를 개척해보자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나가 보니 고려대에서 선후배 동기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익힌 인간관계와 도전정신이 크게 도움이 되더군요. 세상 살다 보면 쉬운 일보다 어려운 일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어려운 문제들이 닥칠 때마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이겨내자고 결심했습니다. 세계 어디서든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글로벌 마인드 아닐까요.
▷글로벌 경쟁으로 리더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리더는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합니까.
김 총장=리더는 조직에 비전을 제시하는 동시에 구성원 간 화합을 이룰 줄도 알아야 합니다. 반대하는 구성원의 힘까지 한데 모을 수 있어야 진정한 리더지요. 다른 사람의 처지에 공감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최근 방한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테라파워 회장)는 훌륭한 기업인으로서 조직에 비전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사회에 자신이 번 돈을 되돌려주고 있기 때문에 존경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회장=리더와 매니저(관리자)는 차이가 있습니다. 매니저는 하루 단위, 1주일 단위로 계획을 짭니다. 기간이 짧죠. 리더는 2년, 3년 미래를 생각하고 남들보다 한발 앞서 비전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리더가 매니저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는 이유입니다. 남들을 쫓아가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돈 앞에 있어야 돈이 보이지, 돈 뒤에서는 돈이 보이지 않지요. 리더는 리스크도 과감하게 감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 위험이 있는데, 위험을 감당할 수 없다면 리더가 되기 힘들지요.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되찾기 위해 기업가 정신을 되살리자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 회장=창업은 성공보다 실패하는 사례가 많지만 실패가 두려워 창업하지 않으면 아예 성공할 기회조차 없는 것입니다. 실패한다 해도 전부 잃는 것은 아니지요. 1억원짜리 프로젝트에 실패한 경험은 5억원짜리 사업을 일으킬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미국에서는 3인 이하 창업 기업이 2900만개나 된다고 합니다. 이런 도전정신이 ‘팍스 아메리카나’의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총장=누구든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잘 할 수 있어요. 기업가 정신을 키워주려면 청년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러려면 스펙보다 사람 됨됨이를 보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대학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친구를 사귀었는지가 영어점수 몇 점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 회장=기업가를 존중하는 분위기도 필요하지요. 노동운동에 매달려 있는 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창업 한번 해 보고 나서 사장을 비난하라’는 것입니다. 기업가가 얼마나 피눈물나게 노력해서 기업을 일구는지 평가해줘야 합니다. 게이츠 회장이 서울대에서 강연했을 때 학생들이 수천명 몰렸다죠. 미국 하버드대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이 강연해도 똑같은 풍경이 벌어질 것입니다.
김 총장=학생들의 기업가 정신이 사회에서 발현되려면 산학 협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고려대는 산학 협력에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적극 반영하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를 가진 학생이 창업할 때 학교가 컨설팅이나 자금 지원을 하는 거지요. 사회에 나가기 전에 성공이든 실패든 경험해 보면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벤처 동아리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대학과 기업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해야 할까요.
김 총장=대학이 배출한 좋은 인재가 기업을 발전시키고, 기업은 대학에 성과를 나눠줘서 더 좋은 인재를 배출하도록 하는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대학이 벌이는 연구도 인재처럼 기업이 활용하고 대학에 재투자할 수 있어야 하고요.
▷대학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요.
김 총장=무엇보다 다양성의 효과와 의미를 제대로 인정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합니다. 한국 대학들이 글로벌을 강조하는 것처럼 선진국 대학들은 다양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요.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다양성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와 같이 예측할 수 없는 변화들이 빠른 속도로 일어날 때는 더 더욱 그렇습니다. 대학은 학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유지하면서 기초 학문과 응용 과학을 융합시켜 새로운 분야가 개척되도록 길을 열어야 합니다.
이 회장=산업 측면에서 생산의 중요한 요소는 자본과 노동에서 지식과 정보로 바뀌고 있습니다. 지식과 정보가 국가 경쟁력을 창출합니다. 그리고 지식과 정보는 대학에서 나옵니다. 대학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창구여야 합니다. 취업률 같은 획일적인 잣대로 대학을 평가하기보다 연구와 교육이라는 대학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반값 등록금 논란이 아직 지속되고 있습니다.
김 총장=모든 대학을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요. 2018년이면 고교 졸업생이 대학 정원보다 적어집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특성화가 잘 된 대학은 경쟁력을 더 높여주고, 한계점에 달한 대학은 구조조정하는 것입니다. 고려대는 교직원 월급을 수년째 동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학생들에 대한 서비스가 줄어들고 교육의 질도 떨어질 것입니다.
이 회장=대학에 자율성을 주고 경쟁하도록 해야 합니다. 잘되는 대학에는 좋은 인재와 기부금이 몰리고 그렇지 않은 대학은 도태하는 것이 정상적이죠. 미국처럼 기여입학제를 생각해볼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학생을 기부금으로 입학시키고, 그 돈으로 좋은 인재 열 명을 키워낼 수 있다면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를 얻는 거지요.
▷한국과 미국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다른가요.
이 회장=한국인만큼 머리가 좋고 부지런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리더가 될 자질이 충분합니다. 다만 미국과 비교하자면 기본적인 규칙을 지키는 문화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최근 워싱턴에서 불공정 거래로 세 건의 소송이 발생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미국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 기업들입니다. 흔히 미국인들은 모두 ‘칼퇴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직위가 낮은 직원들 얘기입니다. 책임이 커질수록 자기 맡은 일은 확실하게 하고 퇴근합니다.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죠.
사회 / 박기호 지식사회부장, 정리=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김병철 총장은…서울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식육가공학 전공으로 고려대에서 석사, 독일 괴팅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고려대 식품공학부 교수로 임명된 이후 생명환경과학대학장, 교무부총장 등을 거쳐 2011년 3월 18대 총장에 올랐다. 1932년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해 지금의 고려대로 발전시킨 인촌 김성수 선생의 손자다.
이수동 회장은…고려대 산업공학과 69학번으로 동양방송(TBC) 기획실에서 근무하다 1979년 미국으로 이민갔다. 통신업체 MCI에서 나와 1986년 STG를 설립했다. STG는 미국 국무부의 비자, 연금, 급여 시스템 등을 구축·관리하는 정보 시스템 업체로 임직원 1700여명에 연매출은 2억달러다. 최근 SBS 드라마 ‘신의’에 출연한 탤런트 이필립 씨의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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