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감축 유예기간 2년으로
유럽연합(EU)이 사실상 ‘긴축 철회’를 공식 선언했다. 갈수록 악화되는 유럽 경제 상황에 떠밀린 것이다. 지난해 진통 끝에 유럽 의회를 통과한 ‘신재정협약’을 반년 만에 파기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올리 렌 EU 경제·통화담당 집행위원은 내년까지 달성하기로 한 ‘국내총생산(GDP) 3% 이내로 재정적자 감축’ 목표에 대해 “프랑스와 스페인에 2년, 네덜란드에 1년 유예기간을 주겠다”고 4일(현지시간) 말했다.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유지하도록 한 원칙은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통해 명문화됐으며, 지난해 10월 법제화했다. 지키지 못하면 벌금을 내게 돼 있다. 그간 EU 고위직들이 ‘긴축 무용론’을 내세운 적은 있지만, 법으로 정해진 긴축 원칙 철회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유럽 5대 경제 대국 중 3개국이 EU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면죄부’를 받은 셈이다.
사실 프랑스는 재정적자 감축 달성 기한을 1년만 연장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독일은 이마저도 “원칙에 어긋난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그런데 EU는 프랑스의 요구보다 기한을 오히려 더 늘려준 것이다.
EU의 이 같은 판단에는 유럽 경제가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EU는 이날 올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2월의 -0.3%에서 -0.4%로 낮췄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1.4%에서 1.2%로 하향 조정했다. 또 3년간 이어진 긴축에도 내년도 유로존 국가의 평균 부채는 GDP 대비 96%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했다.
렌 위원은 “유럽 각국이 너무 낙관적으로 경제 상황을 보고 있다”며 “노동 시장 개혁 등 필요한 구조조정을 시급히 하지 않으면 경제 상황은 더 안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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