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폐쇄 위기] DJ시절 개발 합의…2004년 첫 제품 생산

입력 2013-04-27 02:59
개성공단은


현대아산과 북한의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는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0년 8월22일 ‘공업지구개발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 총 6612㎡ 규모의 개성공단을 개발하기로 합의하면서 사업이 본격 시작됐다. 2003년 6월에 개성공단 1단계 건설 착공식 후 이듬해 12월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첫 제품이 나왔다. 당시 255명이던 북측 근로자 수는 2006년 11월 1만명을 돌파했고, 2007년엔 총생산액 1억달러를 넘었다.

개성공단은 2008년 이명박정부가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삐걱대기 시작했다. 북한은 같은 해 12월 개성공단에 상주하는 우리 측 인원과 통행 시간을 제한하는 ‘12·1 조치’를 발표했다. 2009년 3월엔 ‘키리졸브’ 한·미연합연습에 반발해 세 차례 통행을 차단하기도 했다. 2010년 3월26일 천안함 사건 직후 정부가 5·24 조치를 통해 신규투자를 금지했다.

정성택 기자 naiv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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