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이 일본의 엔저(低) 유도정책을 사실상 용인했다. 지난 18~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다. G20는 19일 발표한 공동선언(코뮈니케)을 통해 “일본의 통화정책은 디플레이션을 타개하고 내수를 확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명시했다. 양적완화는 ‘국내용’일 뿐 엔저를 통해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일본의'내수부양'논리 수용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는 지난 2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도 열렸다. 당시 가장 뜨거웠던 주제는 ‘환율전쟁’이었다. 모스크바 회의에 참석한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일본 중앙은행(일본은행)이 시중에 돈을 풀어 엔화 가치의 하락을 유도하는 통화확대 정책이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각국의 환율전쟁으로 비화될 것을 우려하면서 일본을 비판했다.
하지만 지난주 워싱턴 회의에서는 환율전쟁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줄었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에 대해 논의했지만 2월 회의와 비교해 훨씬 적은 시간을 할애했으며 토론 분위기도 매우 차분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에 대해 일본이 각국 재무장관들을 상대로 “아베노믹스가 내수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정책”이라는 논리를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WSJ는 이어 “G20 재무장관들이 아베노믹스에 ‘조심스러운 파란불’을 켜줬다”고 평가했다.
#'성장'에 방점 찍힌 워싱턴 회의
이번 회의에서는 환율전쟁 대신 세계 경제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G20는 공동선언에서 “세계 경제 성장이 매우 부진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실업률도 많은 국가에서 여전히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하고 지속가능한 균형 성장을 위해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며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과 한국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예로 들었다. 아베노믹스가 일본은 물론 세계 경제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인정한 셈이다.
다만 G20는 “환율을 경쟁적 목적으로 활용하면 안 되며 통화정책은 각국 중앙은행에 부여된 법적 임무에 따라 국내 물가 안정과 경제회복을 지원하기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또 “장기간 지속하는 양적완화에 따른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유념할 것”이라는 문구를 포함시켰다. 일본과 미국에 대해서는 중기적인 재정건전성 확보 방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엔화 가치 추가 하락 예상
일본 언론들은 “각국이 일본의 경기 회복 노력을 이해했다”며 반색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 시절부터 쌓아온 탄탄한 인맥이 빛을 발했다”며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엔저(低) 비판론자들과 직접 1 대 1로 만나 설득했다”고 보도했다. 또 “한국은 ‘북한 도발보다 엔저 위협이 더 크다’며 엔저를 G20 회의 의제로 채택시키려 했지만 미국 측에 환율 개입 여부에 대한 자료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 불신을 샀다”고 평가했다.
일본 통화정책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될 것으로 전망됐던 G20 회의가 예상외로 무난하게 넘어감에 따라 엔화 가치는 추가 하락했다. G20의 ‘아베노믹스’ 용인으로 향후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가라카마 다이스케 미즈호은행 외환부문 애널리스트는 “조만간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0엔대로 진입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올해 안에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5엔까지 내려가고 내년에는 115엔까지 간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한숨 커지는 국내 수출기업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한숨도 커지고 있다. 최근 삼성증권이 국내 주요 상장기업 43개사를 대상으로 엔화 약세가 실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엔화가 달러당 95엔에서 110엔으로 하락하면 총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81%, 2.77%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엔화가 달러당 100엔으로 떨어지면 이들 종목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0.84%, 1.39% 줄어드는 것으로 집계됐다.
조사 대상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차, POSCO, LG디스플레이, NHN, 한국전력, SK이노베이션, 대한항공 등 각 업종 대표기업들로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의 50%를 차지한다.
엔저에 웃는 기업들도 있다. 엔화 부채가 많은 기업들이다. POSCO는 약 1700억엔의 외화차입금을 갖고 있고 한국전력공사와 롯데쇼핑, 비에이치아이, 현대제철 등도 엔화 부채가 많다. 또 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위아, 화천기공, 한국정밀기계 등 일본에 의존하는 부품이 많은 기업도 엔화 약세로 원가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수혜주로 분류된다.
국내 시장 전반적으로도 엔 약세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속칭 ‘와타나베 부인’들이 엔캐리 트레이드로 한국 증시 투자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엔화의 추가적 약세가 단기적으로 국내 수출 둔화 우려를 지속시킬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엔캐리 활성화로 인해 아시아 지역의 자산 인플레이션 기대감을 높여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남윤선 한국경제신문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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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화 속력내는 아베… 각료·의원들 줄줄이 신사참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4일 한국과 중국이 아소 다로 부총리 등 각료들의 잇단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 반발하고 있는 데 대해 “일본 각료들은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을 자유를 확보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라고 말했다고 지지통신이 보도했다. 이런 아베 총리의 발언은 한국과 중국 등의 항의를 무시하고 앞으로도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용인할 생각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한·중 양국이 한층 반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총리는 최근 우경화에 급속도를 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과거사를 반성한 무라야마 담화의 재검토를 공언하고 각료와 의원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줄지어 참배하고 있다. 주변국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7월 참의원 선거 때까지는 경제에 올인하겠다던 아베 총리의 약속이 공염불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현상은 아베 총리가 대중적 지지도를 근거로 과도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의석 수 3분의 2 이상을 확보하는 대승을 거뒀고 이후 아베노믹스를 통해 주가 상승, 엔화 하락을 이끌어냈다. 최근 일본은행이 발표한 양적완화 정책은 한국, 대만 등 주변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주요 20개국(G20)의 호응을 얻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논의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아베 총리는 “국익을 지키고 역사와 전통 위에 자긍심을 지키는 것이 총리로서 나의 일”이라며 “이런 의무를 하지 않음으로써 (한·중 양국과의)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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