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병영 이야기
1970년 국세청 근무중 논산 입대…'김신조 사건'으로 병장만 15개월
밑바닥 체험하고 배려 자세 배워
“조 병장 빨리 집으로 가보게!”
1972년 1월 중순, 추운 날씨에 부대 막사 주변의 제설 작업을 마치고 내무반에 막 들어서고 있는데 인사계 선임하사로부터 어머님이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어머님은 52세의 많지 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후반부 병영생활을 정신적으로 몹시 힘든 상태에서 보냈다.
1968년 1월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근처까지 침투했다가 우리 군과 교전까지 벌어진 엄청난 사건이 터진 지 몇 년 지났지만 당시 군대 분위기는 여전히 살벌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 사건을 계기로 해이해진 군기강을 크게 질타했고 육·해·공 전군은 극도의 긴장 상태였다.
그 즈음인 1970년 4월20일 나는 국세청에서 하급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중 24세의 나이로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 같은 또래에 비해 다소 늦게 입대한 터라 서너 살 어린 선임들에게 꼬박꼬박 존대말을 해야 했다. 또 선임병들의 갖은 폭언은 물론이고 한밤에 집합해 기합을 받은 뒤 보초근무까지 서야 하는 몹시 힘든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의 국세청에서 근무하다 입소했기 때문에 내가 느낀 어려움은 더 컸던 것 같다. 여기에 나를 특히 아껴주던 어머님도 세상을 떠나셨으니 마음을 다스릴 수 없는 상태까지 간 것이다.
훈련병 시절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6주간의 논산훈련소 훈련을 마치고 보직 병과를 받기 위해 훈련소 배출대대에서 약 보름간 대기하다 다른 동기에 비해 늦게 김해공병학교에 가서 8주간의 후반기 교육을 받게 됐다.
그때 나를 황당하게 만든 것은 군번도 나보다 늦은 후임병이 후반기 김해공병학교에 나보다 1주일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한 기수 늦게 들어온 우리 기수를 대표해 향도(반장)로 있던 나를 불러 곡괭이 자루로 기합을 주면서 선배 대접을 하라는 것이었다. 8주간의 교육 내내 선임 대접을 해야만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김신조 사건’으로 군 복무기간이 몇 개월씩 늘어나면서 나는 병장 계급장만 15개월 이상 달고 다녀 군대 말년 생활이 얼마나 지루했는지 모른다. 35개월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국세청에 다시 복직했다. 한 달 모자라는 3년간의 군복무 중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군대라는 조직이 일반 직장과는 다르구나.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어쨌든 나보다 선임병이니 그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고 때론 자존심을 버려야 조직생활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구나’ 하는 진리 아닌 진리도 체득했다.
무엇보다 밑바닥부터 기며 군생활을 하다 보니 제대 후에도 밑바닥 인생의 실상을 알게 됐고, 나보다 더 어려운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자세도 배울 수 있었다.
내 아들도 늦은 나이(28세)에 입대했다. 그러나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군복무를 마쳤으니 이 또한 다행이다. 지금도 아들은 가끔 나에게 이야기한다. 어려운 여건에서 인내심을 키워 나가는 좋은 단련의 기회였다고 하면서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젊은이들에게 틈날 때마다 강조하는 이야기가 있다. 군대를 가면 어느 누구에게도 배울 수 없는 인내와 단련의 기회를 갖게 되고, 또 앞으로 이어질 길고 긴 인생 여정에서 보면 자신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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