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썼다면 범죄행위" vs "가정 침대까지 관여해서야"
“국가 형벌권이 침대까지 넘보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다.”(신용석 변호사)
“무자비한 폭행 방치는 국가의 보호의무 포기다.”(이건리 대검 공판송무부장)
아내를 강제로 성폭행한 남편을 강간죄로 형사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공개변론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렸다. 이혼에 동의하는 등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른 부부 간에는 강간이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부부 사이에 강간죄를 인정한 판례는 없는 상황에서 1, 2심이 모두 유죄를 인정함에 따라 이날 뜨거운 찬반 공방이 오갔다. 양승태 대법원장 등 대법관 13명이 전원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공개변론에는 200여명의 방청객이 몰렸다.
부부강간죄 반대 입장의 변호인 측 신용석 변호사가 포문을 열었다. 신 변호사는 “형법 279조에서는 강간죄 객체를 ‘부녀’로 규정하고 있는데 사회 통념상 아내를 부녀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며 “부부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했을 때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법 해석을 하는 것은 명확성 원칙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간죄 객체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고친 개정 형법이 6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법률상의 부녀에 처가 포함되는지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국가의 간섭이 도를 넘어 일반 가정의 침대까지 넘보는 상황은 과도한 법 해석이며,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변호인 측 참고인으로 나선 윤용규 강원대 교수도 “대법원은 지금까지 부부강간죄에 대해 ‘신중한 부정’의 입장을 견지해왔다”고 거들었다. 그는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인정되는 경우라면 강간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기존 해석은 타당하다”며 “명확한 이유 없이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해석을 바꾼다는 것은 신(新)응보주의로 비춰질 가능성도 있다”도 했다.
특수강간 혐의로 기소한 검찰의 ‘창’도 날카로웠다. 이건리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은 “형법에서 강간죄 객체를 부녀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배우자를 제외할 수 있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며 “칼과 흉기를 사용한 무자비한 폭행을 부부관계라는 특수성을 이유로 보호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이는 국가의 보호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검찰 측 참고인으로 나선 김혜정 영남대 교수는 “결혼을 했다고 해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포기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치 않는 성교를 하지않을 자유가 침해될 경우에 배우자도 강간죄의 객체로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신영철 대법관은 검찰 측에 “부부강간은 두 사람만 있는 은밀한 장소에서 일어난다”며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수사와 재판이 일어나는 부작용은 우려되지 않는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이 부장은 “부부강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강간 범죄 자체가 입증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입증의 어려움 때문에 시도하지 않는 것은 보호의무 방기”라고 답했다.
이날 공개변론은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 중인 사건이 사례가 됐다. A씨는 2001년 결혼한 아내와 불화로 부부싸움이 잦았다. 그러던 중 밤늦게 귀가한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억지로 성관계를 맺었으며,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1·2심은 “민법상 부부는 성생활 의무를 포함한 동거의무가 있지만, 형법에서는 강간죄 객체를 ‘부녀’로 규정하고 있을 뿐 다른 제한을 두고 있지 않아 법률상 처가 제외된다고 할 수 없다”며 “ 폭행·협박 등으로 억압해 강제로 성관계를 할 권리까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지훈/정소람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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