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에서 ‘장영희 장학금’ 수여식이 지난 15일 열렸다. 장학생으로 선발된 학생들은 김영일(영문07), 조승현(중문07), 김혜진 씨(사회10) 세 명이다. 고 장영희 교수(영문과)의 뜻을 기려 만들어진 이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2010년부터 올해까지 모두 18명에 달한다.
장 교수가 세 번째 암 발병으로 세상을 떠난 2009년, 장 교수의 유족들이 서강대학교에 3억5000만 원을 기부했다. 장 교수의 인세와 퇴직금을 모은 돈이었다.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늘 걱정했던 고인의 뜻을 기려 서강대는 이 돈으로 장영희장학금을 만들었다.
장 교수는 1975년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77년 서강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딴 후 85년에 모교로 돌아와 전임강사로 일했다. 95년부터 2008년 발병한 간암으로 학교를 떠나기까지 장 교수는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장 교수는 2001년 유방암 선고를 받고 2004년에는 척추암까지 발병했지만 2005년 강단으로 돌아왔다. 암이 완치되지 않았으나 ‘서강’의 학생들 앞에 서겠다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 교수의 ‘서강 사랑’이 남달랐던 이유가 있다. 장 교수가 대학입시를 치를 무렵
장 교수를 받아주겠다는 대학은 없었다. 태어난 지 1년 만에 소아마비로 인해 생긴 두 다리의 장애 때문이었다.
장 교수의 아버지는 서울의 유수 대학의 입학처장과 교수들에게 입학시험이라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냉담했다. 그러다가 찾아간 곳이 서강대였다. 당시 영문학과장이던 브루닉 교수는 “입학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보느냐”며 장 교수가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장 교수는 코리아 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사실 나는 그냥 서강대 교수가 아니라 뼛속까지 ‘서강인’이다.…서강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 칼럼을 쓰고 있지도 못했을 것이고, 어쩌면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가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서강대 국제인문관 3층에는 ‘장영희 강의실’이 생겼다. ‘장영희 강의실, 서강과 제자를 사랑하신 고장영희 교수(1952~2009)의 아름다운 마음을 기리고자 이 강의실을 장영희 강의실로 명명합니다’라는 현판이 강의실 앞에 걸려 있다. 서강대 학생들은 장영희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으며 장 교수의 서강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한경닷컴 권효준 인턴기자 winterrose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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