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세 강화· 저금리 여파
은행에서 개인들의 뭉칫돈이 빠져 나가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등의 과세 기준이 강화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은행을 빠져 나온 돈이 금고로 들어가는 이른바 ‘화폐 퇴장(退藏)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4일 한국은행과 금융계에 따르면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의 계좌당 예금액 5억원 이상인 개인 정기예금 잔액은 작년 말 19조2329억원에서 지난 3월 말 17조8855억원으로 1조3474억원(7.0%) 줄었다. 이들 은행의 5억원 이상 개인 정기예금 계좌 수도 같은 기간 1만5289개에서 1만3920개로 1369개(8.9%) 감소했다. 5억원 이상 개인 예금자가 은행을 빠져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국재 우리은행 투체어스강남센터 팀장은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부터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연간 이자 및 배당소득 4000만원 이상에서 2000만원 이상으로 강화됨에 따라 거액 예금자들이 돈을 빼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연 3% 안팎이다. 은행 예금이 5억원 이상이면 연간 이자소득이 2000만원을 넘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된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빼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올해부터 자녀나 배우자 등의 차명계좌에 넣어둔 돈에 대해서도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게 된 데다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통보되는 현금거래 기준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은행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은행에서 빠져 나온 거액 예금 중 상당 부분은 머니마켓펀드(MMF)에 머무르며 투자 대상을 찾고 있고, 일부는 골드바 및 미술품 같은 실물로 흘러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들이 맡긴 MMF 잔액은 작년 말 18조4723억원에서 지난 3월 말 19조8544억원으로 1조3821억원 증가했다. 한국금거래소 등에서 팔린 골드바 규모도 작년 12월 5억5700만원에서 올 1월 6억4800만원, 2월 8억4100만원, 3월 21억원 등으로 매달 늘어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거액 자산가들이 예금을 현금화해 개인 금고에 저장하는 화폐 퇴장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5만원권 지폐 발행액이 전쳬 화폐 발행액의 64%를 차지하는데도 5만원짜리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올 들어 개인금고 판매액이 매달 20%씩 증가하는 것을 보면 개인금고로 돈을 숨겨두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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